어느 도망자의 고백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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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나라면 어땠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성찰하게 될 때가 있지요.

일견 불쾌하기 그지 없는 철없는 '가해자'의 마음의 소리, 행동 그리고 그의 진심어린 반성을 통해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스포일러 포함]

음주운전에 뺑소니 사건을 일으킨 20대 명문대 청년 쇼타는 지극히 자기 본위적인 인물입니다.

자신의 운전 과실로 생명을 빼앗긴 피해자에 대한 속죄보다는

이 죄가 밝혀져 자신과 자신에게 소중한 가족이 잃을 것을 먼저 생각하고 철저히 그에 기반하여 행동합니다.

쇼타의 범죄 행각이 밝혀지며 그는 전도 유망한 좋은 대학의 평범한 대학생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한순간 전과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의 가족은 풍지박산 났고 그의 친구들은 등 뒤에서 그를 비웃습니다.

유명한 교육평론가였던 아버지는 명예를 잃고 알코올 중독에 빠져 사망했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혼했으며, 결혼을 목전에 두고 있던 누나는 약혼자와 파혼했습니다.

소중한 아내이자 어머니를 음주운전 뺑소니 사건으로 잃은 피해자 가족은

극심한 분노를 느끼지만, 법의 심판에 맡기며 사적 보복은 생각하지 않는 건전하고 온건한 시민입니다.

그런데 아내를 잃은, 피해자의 남편 노리와 후미히사는 사설 탐정을 고용해서까지

가해자인 쇼타를 추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복수를 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쇼타는 어떻게 진정한 반성과 속죄, 회심에 이르렀을까요?

처음 읽으면서 쇼타의 가족 중에 정상인 사람은 누나 한 사람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몇 년만에 아버지 장례식에서 만난 쇼타에게 싸늘한 눈빛으로

진정 미안함을 느껴야 할 대상은 피해자와 그녀의 가족이라고 일침을 놓습니다.

쇼타는 처음에는 20대라는 인생의 황금기를 복역하고 전과자 딱지를 붙이게 되었으니

이미 속죄하였다는 마음을 가졌지만, 마음을 돌이키고 용기를 내어 피해자의 남편을 만나러 갑니다.

한편 피해자의 남편인 노리와 후미히사는 고령으로 인해 치매가 점점 심해집니다.

그러면서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는 가해자 청년인 쇼타에게 일생을 짓눌러왔던 자신의 죄를 고백합니다.

전쟁에서 수없이 사람을 죽였던 것,

그 괴로움을 잊기 위해 당시에는 손쉽게 구할 수 있었던 필로폰에 손을 댔던 것,

필로폰으로 인해 황홀경에 빠져

아직 어린 아기였던 장녀 후미코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지 못하여 그대로 떠나보낸 것...

노리와 후미히사와의 만남은 쇼타를 인간으로 돌려놓았습니다.

쇼타는 진심어린 속죄를 하고 자신 곁에 끝까지 머물러준 여자친구, 그리고 자신의 어린 아들과 함께

진실한 인간으로 살아갈 것을 결심합니다.

피해자의 가족에게도 그런 쇼타의 마음이 전해졌기에 그들도 진정한 위로를 받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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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신이 지금 어떤 범죄에도 휘말리지 않고,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입장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운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쇼타처럼 어느 순간의 사건, 그에 대한 잘못된 결정으로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뒤틀려버릴 수가 있지요.

처음에는 파렴치한 쇼타의 모습을 비난했지만,

제가 쇼타였어도 피해자의 가족보다 어쩌면 내 소중한 사람들이 당할 괴로움을 먼저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니 마음이 불편했지만, 안전한 심판대에서 그를 비난할 수는 없더군요.

오히려 어떻게 진정한 속죄에 이르게 되는지를 관찰하게 되었어요.

노리와 후미히사는 피해자이면서도 자신의 젊은 시절의 죄를 평생 곱씹으며

그 죗값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쇼타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본말이 전도된 듯한 모습이 되었지만,

결국은 쇼타가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게 되는 모습이 찡했습니다.

그리고 쇼타는 참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했지요.

인간의 모습을 되찾았으니까요.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으니까요.

우리가 진정한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하게 염원하며 책을 덮었습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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