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완벽한 스파이 1~2 - 전2권
존 르 카레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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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로 유명한 존 르 카레가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애착을 가진다는 평을 한 자전적 소설이다. 존 르 카레 자신이 전직 스파이였기에 007 영화 등의 스파이를 그린 영화에서 흉내낼 수 있는 외면적인 활약상, 대활극 이상의 스파이의 내면의 갈등과 고뇌, 정체성에 관한 통찰, 스파이 세계의 명암을 세세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읽으면서 문체에 적응하기도 힘들고 내가 모르는 문화적/시대적 배경이 있을 것 같아 몇 번이고 구글로 검색해 봤는지 모른다. 원어민들에게도 그리 쉬운 책은 아닌지 아마존 서평에도 난해하다는 서평이 꽤 많았다. 그럼에도 첩보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꼭 한번 읽어볼 소설인 것 같다.

제1, 2차 세계대전이 끝없는 역사 장편소설의 원천이 된다면,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며 전 세계가 양분되는 냉전시대는 끝없는 첩보소설의 원천이 되는 것 같다. 여기에 핵무기까지 가세하면 작가들의 상상력이 폭발한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첩보활동 중인 영국정보부 비밀요원 매그너스 핌은 런던에서 열린 아버지 릭의 장례식에 참석한 후, 행방을 감춘다. 역시 비밀 요원이자 정략적 아내인 메리 핌은 빈에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메리를 찾아온 것은 매그너스의 상사인 잭 브라더후드였다. 대단히 당황하고 분노에 찬 모습의 그는 메리에게 다짜고짜 핌의 행방에 관해 묻는다. 그 사이, 매그너스는 데번 주 남부의 고즈넉한 바닷가 마을에 도착하여 노파가 운영하는 허름한 여관에 켄터베리라는 가명으로 방을 장기 대여하여 입실한 참이다. 그는 거기서 회고록을 쓰기 시작한다. 소설은 핌이 자기 아들 톰에게 말하듯 과거에 관해 서술하는 1인칭 시점과 현재 행감을 감춘 핌을 추적하는 3인칭 시점이 교차하여 서술된다.

핌의 서술 중 압도적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자신의 유년시절과 아버지 릭의 인간상에 관한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랑 없는 결혼은 물론, 자식을 속이기도 하는 사기꾼 릭은 철저히 자기 본위적인 사람이었다. 사기꾼에게 희생된 릭의 아내이자 핌의 어머니는 정신병에 시달린다. 핌은 은연 중에 아버지처럼 살지 않고자 했겠지만, 그 역시 절친한 친구인 악셀을 배신하는 행위도 서슴치 않으며 아버지와 닮은 자기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누구 하나 의지할 이 없는 유년 시절의 닻이자 햇살이 되어 준 유대인 립시에 관한 애정어린 서술에서 그가 위안을 얻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자기 모습을 그대로 직시하며 아들인 톰에게 독백을 읊조리는 모습에서 톰이 자기모순 없이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진행되는 추적 속에서 그가 영국정보부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공산국가인 체코의 스파이로, 즉 이중 스파이로 살았음이 밝혀진다. 그를 좇는 잭 브라더후드는 극비가 노출될까 봐 전전긍긍하지만, 핌은 여관방에서 자기 인생을 회고하며 자기 인생의 종말을 결정한다.

이전에 전직 여성 스파이였던 아마릴리스 폭스의 논픽션 <언더커버>에서 스파이로서의 진솔한 속내를 들을 수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더 깊은 인간적 고뇌를 느낄 수 있었다. 자기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자기 모순 속에 사는 첩보원들로 인해 어쩌면 우리의 평온하고 고요한 일상이 지탱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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