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에 사는 네 여자
미우라 시온 지음, 이소담 옮김 / 살림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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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분인 미우라 시온 작가님의 책이다. 원서로 먼저 만났고 번역서로 또 한 번 만났다. 몇 번을 읽어도, 무슨 언어로 읽어도 그 재기 넘치는 필력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이다. 한두 권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작품은 있었지만 출간작품을 거의 다 읽었으니 명실상부한 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가족은 아니지만 한 지붕 아래서 함께 먹고 마시고 자며 가족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 네 명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을 오마주한 작품이기도 하다.

부잣집 아가씨로 고생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70대 여성 쓰루요, 그녀의 딸이자 30대 후반 자수작가인 사치, 사치가 정말 길거리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친구가 되고 같은 지붕 아래에서 살게 된 동갑내기 친구 유키노, 유키노가 끌고 들어 온 회사 후배 20대 다에미. 그리고,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는데 쓰루요와 그녀의 딸 사치를 호위무사처럼 지키고 있는 수수께끼의 남성 야마다.

이들은 적어도 '현재' 가족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설사 언젠가는 뿔뿔이 흩어져버릴 인연이라 할지라도. 이들에게도 각각 마음 속에 숨겨진 비밀과 고민, 상처가 있다. 그 모습들을 제3자의 시선으로 읽어주는 또 하나의 주인공 까마귀도 등장한다. 그리고 뜻밖의 갓파 유령 사건이 등장함으로써 이들의 마음 속을 엿볼 수 있기도 하며 뭔가 사랑의 시작이 예감되는 설렘도 느낄 수 있다.


도쿄도에는 속하지만 도쿄 중심부에서는 살짝 벗어난 무사시노 지역. 이 지역은 전통적인 유서 깊은 부자들이 사는 곳이다. 갑자기 벼락부자가 되거나 엄청난 때부자가 아닌, 전통적으로 부유하고 자부심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저택이라고 부를 만한 널찍하고 한가로운 집에서 살아가는 네 여자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동경의 대상이었다.

기숙사가 나오는 소녀 소설을 읽으며 여자들의 공동체를 꿈꾸어보기도 했는데 이렇게 70대~20대의 폭넓은 세대의 여성들이 함께 먹고 마시며 웃고 우는 이야기는 또 다른 동경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에서의 교환학생 기간과 일본에서의 연구생 기간 동안 실제로 이런 기숙사 생활을 경험해보았는데 역시 좋은 추억이었던 것 같다. 인생에서 돌아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경험이었다.


일본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 까마귀와 갓파의 등장이 너무 뜬금없으며 갑자기 SF적 요소가 등장하여 감흥이 깨졌다는 글들이 꽤 많았다. 그러나, 팬심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나는 개인적으로 그 설정이 꼭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까마귀는 부잣집 딸로 곱게만 자라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지금도 자기 본위인 것처럼 보이는 쓰루요의 청춘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노인, 할머니라는 이름으로 싸잡아버리는 경향이 있지만 그녀에게도 찬연하게 빛나는 청춘이 있었고, 모든 걸 내던진 사랑이 있었음을 담담하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느닷없는 갓파 사건은 쓰루요의 청춘 때의 사랑의 결실인 사치의 37년 인생이 늘 내재되어 있던 고독,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의문, 허전함을 채워주는 아버지의 사랑이었던 것이다.

아, 미우라 시온의 세계 속에 살고 싶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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