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출생. 태어남. 이 자체가 운명적이다. 왜냐하면 어느 시대에, 어느 국가에, 어느 인종으로, 어느 성별로, 장애 유무, 어느 장소에, 어느 부모 밑에서, 어느 환경에서, 어느 형제자매, 친척, 친지들 속에 태어날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종, 국적, 성별, 경제 수준 등 나도 모르게 붙어버린 수많은 꼬리표들이 과연 나를 대변하는 것일까? 나의 인격, 나의 성격, 나의 가치관과 상관없이 한 집단으로 묶여 판단되는 합리성과 편리성은 때로는 아니, 매우 자주 폭력이 된다.
"아이덴티티를 하나의 뭔가로 묶어놓고 그걸 타인이 쥐어 잡고 흔든다는 것은 정말 못 견딜 일이에요. (163쪽)"
특히, 안과 밖을 나누는 일본 사회에서 일본 국적을 가졌으면서 뿌리는 한국에 두고 있는 변호사 기도는 자신의 본래 이름을 버리고 타인의 삶을 살았던 리에의 남편에게 감정이입을 하여 필요 이상으로, 또 리에의 기대 이상으로 사건을 심층적으로 파고든다. 재일교포 3세였기에 한국, 북한 양쪽에도 그 어떤 동질성도 느끼지 못하고 단어 한마디 하지 못하며 일본에서 나고 자라고 교육을 받은 법조인임에도 그는 재일교포라는 하나의 카테고리 속에 포함되어 버린다. 반면, 그의 뿌리인 한국에서는 그는 그저 일본인일 뿐이다.
젊은 시절의 강상중 교수님의 내적 갈등이 엿보이는 듯하고, 재미교포 작가 이민진의 <파친코>의 재일교포 3, 4세들의 모습이 여실히 보이는 듯했다. 어떻게 이렇게 자기 안에서 분열되는 자아의 모습을 일본인인 히라노 게이치로는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었을까? 감탄하게 된다.
그럼,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외부에 의해 규정된 아이덴티티가 내가 아니라면 나는 무엇이고, 우리는 상대방의 무엇을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 이름일까? 현재 사랑하는 사람의 과거가 나의 상상을 배반하는 것이라면? 그 사랑은 성립할까?
"그렇게 되면 우리는 누군가를 좋아할 때, 과연 그 사람의 무엇을 사랑하는 걸까요. 처음 만나서 현재의 그 사람에게 호감을 갖고, 그다음에는 과거까지 포함해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죠. 근데 그 과거가 생판 타인의 것이라는 걸 알았다면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은......?(3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