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 나이프 - 왼팔과 사랑에 빠진 남자
하야시 고지 지음, 김현화 옮김 / 오렌지디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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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인 오늘날에도 사람의 뇌는

인류에게 남겨진 유일한 미지의 영역이다.

50억 년에 걸친 진화의 산물이자 신경세포 1천 억 개가 모인,

우주가 만들어낸 가장 복잡한 창조물.

(6쪽)

아름답고 공들여 만든 느낌이 전해지는 양장본의 책이 얼마나 맘에 드는지 계속 손에 붙들고 있었다. 의료 소설에 관한 관심이 많기도 했지만, 우리나라 및 일본 배우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아마미 유키의 오랜만의 드라마 컴백을 기대했던 작품의 원작이어서 기대가 무척 컸다. (이 작품 원서 출간이 2019년 12월, 드라마 시작이 2020년 1월이었다.) 바빠서 드라마는 보지 못했지만, 캐스팅된 배우들의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여 네 명의 천재 신경외과 의사들의 모습이 책을 읽어가며 머릿속에 3차원 입체 영상으로 재생되었다.


☆워크 라이프 밸런스에 실패한 돌싱 50세 여의사 미야마.

- 일을 놓을 수 없어 딸의 손을 놓아버렸지만, 십대 소녀가 된 딸과의 시간을 보내며 내면의 모성을 발견하지만 딸을 위한 최선이라고 생각하여 전남편의 가정으로 딸을 보낸다.

☆일본 최초 '톱나이프' 칭호를 받은 화려한 싱글 53세 구로이와.

- 어려서 가정 학대를 받는 외로웠던 소년이 아직 그 속에 살아 있다. 어느 날 눈앞에 나타난 친자라는 다섯 살짜리 남자아이 다모쓰와의 일주일을 통해 어린 날의 자신과 화해한다.

☆재능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젊은 천재 34세 니시고오리.

- 엘리트 의사 집안에서 끊임없이 폭주 기관자처럼 자신을 다그쳐 젊은 천재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늘 경직되어 있고 관계 맺기에 서툰 덜 큰 어른이다. 서번트 증후군에 걸린 환자와의 교감을 통해 조금은 마음의 긴장을 내려놓는다.

☆평생 1등만 했지만 공감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신출내기 26세 여의사 고즈쿠에.

- 사랑해 본 적이 있느냐, 라는 사람 좋은 외과 부장의 말 한 마디에 피리부는 사나이를 따라 갔던 아이들처럼 신경외과로 왔지만, 실수투성이로 하루도 무사히 넘어가는 날이 없다. 그러나, 자신의 왼팔과 사랑에 빠진 70대 남성 환자와 그의 아내를 보며 조금은 '사람의 마음'에 다가간다.


천재 신경외과 의사들의 삶 속의 아픔, 트라우마와 함께 이들이 만나는 환자들과의 공명이 가슴 찡하게 그려진다.

'왼팔과 사랑에 빠진 남자'라는 부제가 붙어 있어 왼손잡이 천재 신경외과 의사 이야기가 나오나 보다 했는데, 읽고 나니 신경외과 의사이자 작가인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와 같은 맥락의 뇌 질환에서 비롯된 망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뇌의 이상으로 나타나는 미스터리한 증상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한쪽 반을 인식하지 못한다거나 자신의 엄마를 외계인으로 인식하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음악 전체를 머릿속에 재현해내는 서번트 증후군을 앓기도 하고, 자신의 왼팔을 사랑하기도 하는 등 매우 신비로운 증상으로 인해 미지의 영역인 뇌에 관한 호기심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그야말로 0.1밀리리터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며 지금도 전신을 지탱하는 뇌가 고맙다고 해야 하나, 조물주의 능력에 경외심을 품게 된다고 해야 하나?

천재지만 밉상인 구로이와가 친자인 줄 알았던 다섯 살짜리 꼬마 다모쓰와 보낸 자상한 시간, 그리고 구로이와를 지켜주기 위해 자신이 아끼던 열 개의 장난감을 구로이와의 집 곳곳에 남겨두고 떠난 다모쓰의 모습에 눈물이 왈칵했다.

흥미로운 뇌의 이야기, 게다가 캐릭터가 살아 있고 에피소드 하나하나에 깊은 감동이 있어서 읽으며 행복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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