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 영어덜트 소설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한국인의 정과 의리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디스토피아 영어덜트 소설의 공식이란 암울한 미래, 희소해진 자원을 독점한 권력자들과 인간다운 삶을 잃은 피권력자들, 그들에게 변화를 가져오는 몇 명의 똘똘한 10대 소년소녀, 그리고 인간성을 잃지 않고 그들에게 조력하는 소수의 건전한 어른, 그들의 반란, 그 속에서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흐름이랄까? 원류라고 할 수 있는 로이스 로리의 <기억전달자> 4권 시리즈에서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공식이라고 보인다.
이런 책을 읽으며 어떤 장치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메타포를 찾는 것이 다소 피곤할 때가 있지만, 이 책은 무척 편하게 47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순식간에 읽어내릴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동경하고 선망했던 것들이 한낱 허상에 불과할 수도 있고, 그것이 반드시 행복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진정한 내 모습으로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메시지도 읽어낼 수 있었다.
영어덜트 대상인데, 10대도 20대도 아닌 나는 이 등장인물 중 누구에 가까울까 생각해 보았다. 영어덜트 소설을 무척 좋아한다. 어설프고 부족하면서도 동료와 함께 좌충우돌하면서 우정을 쌓고 사건이 대단원에 이를 무력 이전보다 한 뼘 성장해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는 흐뭇함에 여전히 자주 읽는 장르이다.
우리나라 영어덜트 문학의 새 지평이 열린 듯하여 뿌듯하고 독자가 될 수 있어 기쁘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