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어휘력 - 말에 품격을 더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힘
유선경 지음 / 앤의서재 / 202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제목을 썼다가 명색이 어휘에 관한 책인데 영어 남발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최고의 책'이라고 썼다. (느낌이 확 안 오는 느낌...) 책 한 권을 통째로 외워버리고 싶은 책을 만났다. 2/3 지점까지 읽은 시점에서 이미 책 좋아하고 책을 쓰고 있는 지인에게 추천했다.

이 책은 어휘력, 특히 학창시절을 다 보내고 어휘 학습을 거의 하지 않는 성인들에게 왜 어휘력이 필요한지, 어떻게 하면 어휘력을 늘릴 수 있는지, 그리고 글쓰는 요령까지 자세히 안내해 준다. 게다가 저자의 놀라운 어휘들을 선보이고 있다. 본문에서 다양한 어휘를 사용하며 그 각주를 꼼꼼히 달아놔서 그 각주가 279개에 이른다. 그 어휘들만 공부해서 내것으로 익혀도 언어생활의 품격이 몇 단계는 뛸 것 같다.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언어가 소통의 기본이 되며 언어의 한계만큼 세상이 넓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나 역시 국어 공부든 외국어 공부든 어휘를 매우 중요하게생각한다. 그리고 갈고 닦지 않으면 저자가 말한 대로 그거, 저거, 그런 거, 그렇잖아, 등등 지시대명사들로 불분명하게 말하면서 상대가 이해하지 못 하면 좌절감을 느낀다.

며칠 전에 작은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청개구리 이야기를 듣고 왔다며 다시 이야기를 들려달라는데 의외로 입에서 술술 나오지 않아 깜짝 놀랐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대략의 내용을 찾아 확실히 내용을 되새기고 나서야 명확한 언어로 이야기해줄 수 있었다. 그리고 TV를 거의 보지 않다가 며칠 예능프로그램 같은 것을 보고 나면 물꼬 트인 것처럼 한국말이 유창해져서 인풋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외국어를 배울 때도 책도 많이 보지만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등 다양하게 접하려고 한다.

저자는 어떤 낱말을 정확히 체험하고 이해하고 나서야 자기것이 된다고 했는데 우리가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없으니 국어사전과 용례, 그리고 직접 문장을 만들고 써봄으로써 어휘가 내것이 되고 언어생활이 윤택해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저자는 말하기와 글쓰기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런 작업을 반복하면서 발견한 사실은 의외로 많은 사람이 말하기와 글쓰기를 분리한다는 점과 주어와 시점을 챙기는 데 서투르다는 것이다. 글을 가장 쉽게 쓰는 방법은 말을 받아쓰는 것이다. 여기에 주어와 시점만 잘 챙겨도 웬만한 문장은 완성할 수 있다. (186쪽)"

우리가 글쓰기 훈련을 많이 받지 않는 편인 것 같기도 하고 백지를 채우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만 우리가 말로 설명할 때 쓰는 언어 그대로 옮기며 조금 다듬는 정도로 접근하면 그리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번역을 해놓고 원문 대조하며 교정 후, 한글 원고만을 가지고 입으로 중얼중얼 읽으며 마지막 교정을 한다. 그러면 어색한 문장이 많이 잡힌다. 보다 자연스럽고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완성하려고 한다.

『편집자처럼 책을 보고 책을 쓰다』라는 책에서 출판물의 대상을 중졸 이상의 대중으로 보며 쓰라고 했던 것을 봤던 것 같다. 그래서였는지 모르겠는데 첫 역서에서 최대한 독자 친화적으로 어휘를 나름 골랐다고 생각했는데 편집자님이 정말 쉬운 말들로 바꾸셨었다. 그게 내 나름대로의 딜레마이다. 이렇게 점점 출판물이 쉬워지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쉬운 표현이라고 해서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일반적이고 대중적이고 무난한 표현 몇 가지만을 쓰게 되는 것이다. 저자도 지적하는 바이다.

그리고 책을 쓰든 번역을 하든 '비슷한 말'을 많이 아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인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것 같다. 가령, '혼내다'는 의미로 질타, 질책, 면박, 꾸지람, 야단치다, 꾸짖다, 타박, 면책 등등 국어사전에 나온 유의어를 포함하여 자신의 경험이 쌓여 가능한 한 많은 비슷한 말들을 엑셀에 정리해 두면 정말 유용하다. 바로바로 떠오르지 않을 때 이전에 작업하며 데이타베이스로 쌓아두었던 어휘들에서 하나씩 대입해보면 맞는 것이 있기도 하고 또 퍼뜩 잠재의식 속에 있던 어휘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고유 창작물이라기보다 고유 저작물을 번역하여 2차 창작물이라고 할 수 있는 역서가 너무 특이한 어휘를 쓰는 것도 의아할 경우도 있다. 원 저자가 그만큼 같은 의미에서도 특이한 어휘를 구사했다면 최대한 그에 적합한 국어 어휘를 찾지만 그렇지 않다면 원어의 느낌을 살린 무난한 말이 좋을 때도 있다.

한 가지 좀 고개를 갸웃했던 것이 있었다. '인적 자원'은 사람을 자원과 동격 취급한 것이니 '인재'라고 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물론 맞는 말씀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이렇게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굳이 쓰는 용어도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인적 자원'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을 볼 필요도 있다고 본다. 기계화를 통한 산업 혁명 속에서 자본가의 횡포 속에서 노동자는 나사 하나만큼의 가치로밖에 보지 않다가 인간, 노동력의 중요성이 대두하면서 생산에 있어 인간이 그만큼 중요한 자원이라는 인식이 새로 싹트면서 탄생한 말이고 그렇기에 인간은 나사 조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게 비슷한 인상을 주는 말이 함무라비 법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무서운 복수의 말이었다. 그런데 당시 상황을 생각해 보면 손해를 입힌 특정 재산 뿐만 아니라 목숨을 빼앗아버리는 일들도 비일비재했기에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만 제한하여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규정한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내가 지금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의 산물을 무조건 재고 자를 수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이 책을 가지고 한 달 넘게도 이런 저런 화두를 찾아내어 토론할 수 있을 것 같다. 두고 두고 읽고 싶고 같이 이 책으로 공부할 동무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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