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공주 해적전 소설Q
곽재식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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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기발하고 재미있는 서평 이벤트를 만났다. 작가 비공개 서평단은 처음이었다.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하고 생각과 달리 길지 않은 분량에 전체가 수록된 건가 했는데 전체가 수록되어 있었다. 신라 시대, 게다가 공주에 해적이라니, 이 조합으로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 지 정말 궁금했다. 찰지고 정곡을 찌르는 대사들로 읽는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장보고 선단을 따라 다니며 잔심부름을 하며 지내다가 장보고가 망한 이후 벌어놓은 재산을 탕진하고 물주를 하나 잡아볼까 하는 장희는 마을 사람들에게 쫓기는 한수생을 만나 생명을 구해준다. 그러다가 해적 무리와 만나 구사일생한 후 또 우연히 200년 전에 망한 백제 부흥을 꿈꾸는 후손들을 만난다. (실은 시정잡배들이다.) 그들은 백제 풍 태자가 숨겨놓은 보물을 찾아 서해의 섬 하나에 모여 산다. 장희가 기지를 발휘하여 가장 핵심적인 악당을 소탕하고 평안한 삶으로 돌아간다.

이 '장희'라는 캐릭터 정말 사랑스럽다. 눈치코치 빠르고 박학다식하며 온갖 술수와 위협이 난무하는 가운데 핵심이 무엇인지 꿰뚫는다. 처세술도 뛰어나며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을 알고, 선한 자와 악한 자를 분별해내는 제갈공명 저리가라 할 만 한 지략가이다. 어쩌다 시절을 잘못 만나 반 사기꾼 같은 행동을 하려 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선량하고 의리도 있다. 이런 멋진 캐릭터가 다 있을까?

재미있게 읽고 넘길 책에는 나도 죽자고 달려들지 않는데 왜 자꾸 머릿속에 '프로파간다'라는 단어가 맴도는지 모르겠다. 한수생은 비록 시골의 가난한 선비이지만 분수를 알고 견실하게 땅을 일구며 글을 읽는 청년이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뜬구름 잡는 듯한 신문물에 현혹되어 모든 것을 탕진하며 한수생의 재물을 탐한다. 한수생의 자비로 재물을 나눠 주었는데 어처구니없는 논리로 한수생이 자신들을 위협할 것이므로 먼저 제압해야 한다며 한수생을 잡으려 한다. 사람들이 선동되어 그릇된 길로 빠지고 거기에서 돌이킬 수 없이 자기 자신을 속이며 또 선동을 하여 더 악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어서 혀를 끌끌 찼다. 허구 속의 진실의 한 방이 아니었나 하고 혼자 생각해봤다.

그리고, 한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선량하고 건전한 양심의 소유자이지만, 자신을 방어할 지혜와 강인함이 없는 한수생, 장보고를 따라 다니다가 해적으로 전락한 일단의 무리들,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고 200년 전에 망한 백제 재건을 빌미로 사람을 몰아 착취하는 무리, 주위에서 공주라고 추어올리니 정말 공주인 체하다가 그렇게 믿어버린 듯한 백제의 공주, 그리고 어떤 상황, 어떤 시대에도 살아남을 놀라운 생존력을 지닌 장희. 이 중 나는 누구인가? 바라기는 장희 같으면 좋겠는데 그처럼 총명하질 못 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읽었지만 그저 정말 재미있었다. 캐리비안의 해적의 키이라 나이틀리를 생각했지만 그 이상의 유희를 누릴 수 있었다. 192페이지 정도 되니 중편 소설 정도라고 해야 하나? 선명한 인물상, 군더더기 하나 없이 속도감 있는 진행 등 중편 소설의 미덕이 모두 발휘된 소설이어서 좋았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 시작되려니 끝나버려서 너무 아쉬웠다. 잔망스러운 캐릭터들을 추가하여 양념도 치고, 묘사도 좀 더 넣고 에피소드도 좀 더 지금 분량만큼 추가하여 400페이지짜리 책으로 가필해 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품어보았다.

작기 비공개라고는 했지만 검색하면 바로 나온다. 일부러 이런 허술함을 꾀한 걸까? 보통 이력의 작가님은 아니었다. 역시 대단한 분들이 많다. 작가님 이름 확실히 각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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