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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나토미가의 참극 ㅣ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10
아오이 유 지음, 이현진 옮김 / 이상미디어 / 2020년 7월
평점 :

앞표지 속의 폭주 기관차가 인상적인 책인데 극중에서 열차 시간표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추리소설도 좋아하고 특히 다양한 일본 추리소설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오래된 작품을 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고전적이고 묵직해서 정말 좋았다. 요즘 작품들보다 어쩌면 더 나의 개인적인 취향에 맞았던 것 같다.
이상 출판사에서 일본 고전 추리소설 시리즈가 나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말 그대로 해독이 안 되어 이해를 못 할까 봐 두려웠다. 용기를 내어 읽어보았는데,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일본추리소설 시리즈 10번째로 나온 책인데, 앞의 아홉 권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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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경을 자랑하는 시라나미소라는 일본 전통여관에서 잔혹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후나토미가의 안주인 유미코는 살해되었고 남편 류타로는 실종 상태이지만 아마도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전직 경찰인 난바가 파견되었다. 변호사인 사쿠라이와 함께 협업한다. 다키자와라는 청년이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되고 모든 정황 증거가 그가 범인임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난바와 사쿠라이는 그것을 뒤집을 만 한 추리를 한다. 난바의 조수로 온 스사라는 청년은 무척 산뜻한 호감형 청년이다. 다키자와의 친구이기도 하며 다키자와의 약혼자였던 유키코, 살해당한 부부의 딸이기도 한 여성과 결혼이 예정되어 있다.
난바의 추리가 거의 맞아들어가 다키자와의 무죄가 입증되고 사건이 종결되려는 순간, 또 다른 살해사건들이 발생하며 사건은 점점 복잡하게 꼬여간다. 그때 등장한 전설의 명탐정, 아카가키가 현장에 있지도 않으면서 모든 사건을 척척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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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의 과학 수사기술이 발전한 현대에는 가능할 것 같지 않지만, 꽤나 치밀하고 촘촘한 구성이 돋보이는 추리소설이었다. 특히, 일본 사람들의 각별한 애정의 대상인 전차를 소재로 사용하고, 변장과 1인 다역 등 흥미로운 점들이 많다. 고전적이고 묵직하고 쉽게 쓰지 않은 듯한 정중한 느낌의 추리소설이었다.
이 작품 자체에서는 동기(와이더닛)와 트릭(하우더닛)은 매우 흥미로운 데 비해 범인 자체, 즉 '후더닛'은 금세 짐작할 수 있다. 절대 흠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어떤 흠도 없이 그려지는 인물, 모든 피해자들의 근접거리에 있는데 사건을 좇는 난바와 사쿠라이의 레이저망에 한 번도 오르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극중에서는 '바이어스' 때문에 난바가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것으로 풀고 있지만 독자에게는 바로 범인을 지목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건 그렇다치고 범인도 머리가 비상하고 편집증적으로 꼼꼼히 사건을 준비했고, 범인의 각본대로 꼭두각시 놀음을 하는 난바가 애처로웠으며, 셜롬 홈즈처럼 나타나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 검거까지 단번에 이뤄내는 아카가키의 모습이 통쾌했다. 그야말로 추리소설이 주는 쾌감 그 자체였다. 어떨 때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려는 추리소설보다 이렇게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본격 미스터리가 산뜻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사회파 추리소설도 무척 좋아하지만 말이다.
이 작품은 1936년 춘추사의 신작 장편 탐정소설 현상 모집에 1등에 입선했다. 이 소설의 입지는 무척 대단하다. 에도가와 란포, 아유카와 데쓰야, 마쓰모토 세이초 등 우리가 이름만 들으면 알 만 한 걸출한 일본 추리소설의 대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 이후 일본 추리소설이 엄청나게 융성하여 지금까지 탄탄한 추리 작가들이 배출되고 있는 것 같다.
엄청난 일본 지명, 인명과 익숙하지 않은 철도망과 시스템 때문에 어쩌면 그리 읽기 쉽지 않을 수는 있지만, 주요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도쿄 쪽이었으면 그나마 조금은 감이 왔을 텐데 전혀 모르는 곳들이라 만만치는 않았다.
그러나, 일본 고전 추리소설을 맛보고 싶은 분들에게는 강력히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