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레터
이와이 슌지 지음, 문승준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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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이와이 슌지 감독이었다. <러브 레터>가 23년 전 영화였다는 것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카야마 미호의 흰 피부와 오타루의 거리 풍경, 향수를 자아내는 회상 장면들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겨울연가> 등의 한국드라마에서 시작된 일본 내 한류 등으로 양국 관계가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우호적이었던 시절이었다. 이 영화를 통해 동경하던 오타루를 2003년 가을에 찾았다. 신치토세 공항에서 바로 오타루로 향했다. 오타루 근처로 갔을 때 바다 쪽에 바로 붙어 달리던 전차는 마치 바다에 떠서 달리는 느낌이었다. 오타루는 그때 이미 조금 관광지의 면모를 띠고 있어 생각만큼 감성 충만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소도시의 낭만이 없지 않았다. 당일여행으로 신청했던 홋카이도 내륙의 후라노와 비에이가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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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매개로 하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새 책을 마주하니 참 감회가 새롭다. 20년 전, 중학교 동창생이자 첫사랑인 미사키에 관한 사소설로 작은 신인상을 타며 소설가로 데뷔했으나 이후 변변한 작품 하나 내지 못하는 40대 중반 남성 오토사카 교시로는 중학교 동창회에서 혹시나 미사키를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고향으로 내려온다. 그런데 동창회 자리에는 미사키의 동생 유리가 참석하여 미사키인 척을 하고 있다. 좀 일찍 자리를 뜬 교시로와 유리는 버스 정류장에서 얘기를 나누지만 유리는 여전히 미사키인 척을 하며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 실은 미사키는 한 달 전쯤 스스로 목숨을 끊어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연치 않게 유리로부터 편지가 오기 시작한다. 미사키인 척하고. 아직도 널 사랑한다는 교시로의 핸드폰 메시지를 불 같은 성질의 남편이 발견하여 휴대폰을 박살내버린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유리의 편지.

한편 유리의 딸 소요카는 사촌언니 즉 미사키의 딸 아유미를 지켜주고 싶어 장례식 이후 외할머니 댁에서 아유미와 함께 머문다. 한편 아유미의 남동생 에이토는 이모인 유리의 집에 와서 지낸다. 혹시나 해서 예전 미사키의 부모님 집으로 편지를 보낸 교시로에게 미사키에게서 답장이 온다. 유리의 필체와 조금 다른 그 편지는 또 무엇인지 어리둥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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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이 슌지 감독의 책과 영화는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지 머리로 판단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남편이 스마트폰을 부쉈다고 스마트폰 없이 살며 편지를 쓴다는 설정 자체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이 많은 감성적인 소설이었다.

인간관계도 세상 풍조를 따라 변하는데 한 여자를 이렇게 지고지순하게 사랑하고 그리워할 수 있을까? 아마 제대로 종결을 하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다. 자신을 두고 다른 남자와 사랑의 도피를 한 여인이었기에 그랬을까?

유리 부부의 살벌한 부부싸움을 구경하는 잔재미가 있었다. 참 그 남편에 그 부인이다 싶었으나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나, 결국 훈훈하고 따숩게 화해가 일어난다.

무엇보다 아유미와 에이토의 마음의 고통이 내 마음을 저몄다. 내가 엄마라는 입장이어서일까? 세상 그 무엇보다 비빌 언덕이 되어 주는 엄마. 그 엄마가 모든 것, 자기들까지 버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세상을 등졌다는 것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될까? 이모에게도 말은 하지 않지만 초등학교 5학년 에이토의 몸부림이 너무 안쓰러워서 꼭 안아주고 싶었다. 이들에게도 엄마를 그렇게 사랑했던 교시로의 존재는 한 줄기 위안이 되었던 것 같다. 언젠가는 이해할 수는 없어도 수용할 수 있기를... 그래서 건강하고 다부진 어른이 되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읽었다.

그리고 고향을 방문하고 일련의 편지 소동을 통해 덜 자란 듯한 어른인 교시로 역시 맘추었던 시계바늘이 이제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아서 흐뭇했다.

이 작품 역시 영화로 제작되었다. 일본의 정우성이라고 불리는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주인공 교시로 역을 맡고, <4월 이야기>의 여주인공 마츠 다카코가 유리 역을 맡는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핫한 신인 히로세 스즈가 미사키를 맡는다. 상당히 어울리는 캐스팅 같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고향인 미야기 현에서 촬영이 되었다고 한다. 자연이 무척 아름다워서 치유가 있는 이야기와 어울리는 배경이 될 것 같다. 왠지 40대가 된 미사키 역에는 이시다 유리코가 자꾸 오버랩되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운 배우라서 그런 것 같다.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라도 몇 자 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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