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 미트 - 인간과 동물 모두를 구할 대담한 식량 혁명
폴 샤피로 지음, 이진구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획기적이고 충격적이면서도 지성적인 책이었다. 고기와 가축을 얻기 위해 동물을 처음부터 키워 도축하는 것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세포부터 배양하여 원하는 부위를 얻는다는 것이다. 본서 내에서는 Clean Meat, 청정고기라고 명명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배양육'이라고 소개된 것 같다.

식품업계의 혁신이 이렇게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는지 몰랐다. 전기차,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AI 등의 소위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것에는 전문적이지는 않더라도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먹거리, 그것도 고기를 실험실에서 만들어내는 발상은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빌게이츠, 구글 벤처스 등 저명인사들과 벤처 캐피탈들이 투자하는 것을 보면 정녕 도입되고야 말 것 같다. 시간 문제일 것 같다.

저자는 현재와 같은 공장식 사육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몸살을 앓은 적이 있었던 조류 인플루엔자, 구제역, 최근의 아프리카 돼지열병 등의 판데믹 창궐, 그리고 항생제 달걀 파동 등 무분별한 항생제 사용 등은 짐작할 수 있었던 바였는데 실은 동물의 사료가 되는 식물을 기르기 위한 경작지 확보를 위해 열대우림 등이 파괴되고 CO2 발생 등 온실가스의 주 원인이 되는 점이 축산업의 더 큰 해악이라고 나와 있었다. 그러므로 동물 복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환경운동가들 역시 공장식 사육에 반기를 들고 있는 것이다.

사실 주부가 되기 전에는 먹거리에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어렸을 때는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기 위해 음식을 고루 먹으라고 했었다. 그러나 현재 내가 가족의 식탁을 책임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최대한 각 음식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골고루 식자재를 사는 편이다. 어느 먹거리도 믿을 수가 없기에 특정한 어떤 음식을 편식하다가 병을 얻을 것 같아서이다. 최대한 위험을 분산시킨다고나 할까?

항생제 범벅일 계란이나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는 돌아가며 사용하고 잘은 모르지만 청정하다고 하는 호주 소고기를 주로 산다. 난류성 어종으로 후쿠시마 근처 바다를 헤엄치고 왔을지 모를 국산 고등어는 식탁에 안 올린 지 10년이고 방사능을 흡수한다고 하는 표고버섯은 육수 낼 때도 쓰지 않는다. 해류가 고여있어 우리 생각만큼 청정 바다가 아니라고 하지만 노르웨이 고등어를 아주 가끔 요리한다. 시댁에서 보내 주시는 영광 굴비도 고급 어류로 알려져 있지만 꺼림칙하다. 어디에서 잡히는지 잘 모르겠고 폐수를 쏟아낼 중국 쪽 바다에서 잡아서 영광에서 말린 거라면 그것도 불안하다. 유럽에서는 철저히 규제하는 농약을 치는 것으로 알려진 연어도 부페 가면 한두 점 먹는 것으로 만족한다. 연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고행에 가깝다. 지금 나열한 것만으로도 우리 식탁의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가? 그러니 나쁜 것을 다 피하다 보면 먹을 게 없으니 골고루 먹음으로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씁쓸한 현실인가?

이처럼 참담한 식탁의 현실에 '클린 미트'가 대안이 될 것인가? 아직은 조금 이르지만, 그리고 현재와 같은 축산업을 완전 대체하지는 않겠지만 조만간 식품 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물론 난관이 없지는 않다. 비용 절감의 문제, 산업용으로의 대량생산의 과제, 정부 규제 및 기타 행정적 이유, 그리고 무엇보다 소비자의 선택 혹은 저항이다. 자율주행차에 열광하듯 클린 미트를 환영할 것인가?

저자는 고기보다 '가죽'으로 심리적 허들을 낮추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나로서도 섭취하는 것보다 착용하는 가죽, 즉, 지갑, 가방이나 허리띠라면 저항감이 덜할 것 같기는 하다. 가죽제품을 위해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희생되고 있는가? 가죽 생산을 위해서도 동물의 희생 뿐만 아니라 무두질 과정에서 폐수가 발생하는 등 환경오혐 문제가 심각하다.

중국, 인도 등 무시할 수 없는 인구를 보유한 개발도상국들의 발전으로 인해 고기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이 수요를 공급이 감당할 수 있을까? 식물성 고기는 진짜 고기가 아니다. 저자는 동물복지와 환경 문제 등의 해답으로 클린 미트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포드 사의 대량생산 자동차의 등장으로 기존의 마차, 말 사육 등의 산업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처럼 현재와 같은 공장식 사육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우리가 노예제도를 보며 경악하듯 후대 사람들을 경악하게 할 과거의 유물이 될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충격적인 책을 읽은 나의 감상은 '글쎄'라는 것이다. 빌 게이츠,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이 나보다 지혜와 통찰력이 없어 이 새로운 식품 혁신에 투자하고 있는 것은 아닐 테니 분명 미래의 추세가 될 것 같기는 하다. 일단 저자가 제시하고 있듯이, 한 명의 소비자로서 나는 심리적 거부감이 꽤 크다. 얼리 어답터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유기농이나 목초지에서 사육한 동물의 고기를 더 원할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는 또 하나의 제국주의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엄청난 자본력과 기술력이 필요한 산업이고 그것을 보유하고 있는 선진국이 이 시장을 장악하고 판을 짜버리고 이권을 차지한 후 규제에 들어가버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축산업은 소규모로 하자면 닭 한 마리, 돼지 한 마리만 있어도 시작할 수 있는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에 제3세계의 가난한 가정에서도 시작할 수 있지만 클린 미트가 시장을 주도해 버리면 양극화가 더 심해져버릴 것 같다.

마치 전 세계적인 환경 규제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선진국들은 산업화 과정에서 이미 환경을 희생하여 발전을 이루었다. 그리고 후발주자들인 개발도상국들이 이제 발전하려고 하니 환경이라는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명제를 들이대며 규제하려 한다. 환경과 경제 발전은 트레이드오프 관계이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하고 개발도상국들을 미개한 것처럼 몰아간다. 똑같은 일이 배양육 시장에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현재야 개발 단계라고 하지만 대량 생산으로 공급과 공급 가격이 상용화할 정도가 되면 분명 동물복지와 환경 문제를 이유로 규제에 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후발 주자들은 빌 디딜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게 약육강식의 세계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책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조금만 더 크면 이 주제로 책을 읽고 함께 자료를 조사해 보고 토론해 보고 싶은 책이었다. 지금의 고기 및 가죽 소비 행태가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클린 미트의 시대가 더디게 왔으면 하는 바람을 품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