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락 댄스
앤 타일러 지음, 장선하 옮김 / 미래지향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퓰리처상 수상 작가 앤 타일러 작가의 신간이다. 앤 타일러 작가의 책으로 처음 접한 책은 『종이시계』였다. 아마 15년 전이었던 것 같다. 사실 그 작품에 관심이 있어서였다기보다 그 작품의 역자가 故 장영희 교수님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장영희 교수님의 에세이를 읽으며 알게 되어 호기심에 읽어보게 되었던 것 같다. 메이브 빈치 작가처럼 앤 타일러 작가도 대단한 사건을 다루기보다는 우리 주위의 어느 곳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을 통해 삶에서 중요한 것을 살짝 보여주는 분인 것 같다. 두 권밖에 안 읽어보고 할 말은 아니지만 『종이시계』와 『클락댄스』에서 느껴지는 소감은 그렇다.



과거로 대변되는 1967, 1977, 1997의 일들과 현재로 대변되는 2017의 이야기가 굵은 줄기로 진행된다. 1967년에 11살이었으니 주인공 윌라는 1956년생쯤 될 것이다. 어떤 세대일까 생각하며 읽으려 하니 우리 엄마보다 세 살 정도 많은, 거의 같은 세대로 봐도 무방하겠다 싶어서 엄마 세대를 머리 속에 그리며 읽었다.



윌라는 좋게 말하면 다정하고 조심스러우며 배려 있는 여성이고 나쁘게 말하면 주위 사람들의 강한 의견에 따르고 자기 인생에 주도적이지 못한 수동적인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우리나라보다는 여성 인권 및 교육이 앞선 미국 상황이긴 했지만 1900년대 중반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보아 우리 엄마 세대라고 생각을 하니 납득이 가는 부분도 있었다.



1967: 아름답지만 정서가 불안정하여 가정을 순간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엄마, 우직하고 일관적인 아빠, 여동생 일레인 이렇게 4인 가족의 장녀인 윌라. 부부싸움 끝에 엄마가 집을 나가버리고 불안과 초조함이 마음 속에 각인된다. 엄마가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늘 이런 식으로 엄마는 가족의 삶을 뒤흔들어 놓는다.



1977: 윌라보다 나이가 많아 먼저 졸업하는 남자친구 데릭. 윌라는 언어학자를 꿈꾸는 영특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여대생이다. 데릭은 직장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떠나야 하는데 윌라가 공부를 그만두고 자기와 결혼하여 함께 떠나기를 바란다. 공부에 한참 재미도 붙였고 교수님과의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려던 윌라는 망설이지만 결국 데릭을 따른다.



1997: 둘째 아들 이안이 고등학교 재학 중에 휴학을 하겠다고 하여 윌라의 심기가 불편하다. 그 와중에 믿음직하지만 성마른 성격의 데릭이 고속도록에서 옆 차선의 운전자에게 보복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윌라의 삶이 또 한번 전복되는 사건이다.



2017: 그리고 현재. 2017년. 윌라의 두 아들, 션과 이안은 각자 자신의 삶에 열중해 있고 윌라는 재혼한 남편 피터와 함께 애리조나에 살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걸려온 전화. 맏아들 션이 한때 동거했던 드니즈라는 여성이 다리에 총을 맞아 입원했다며 그 딸을 돌봐야 하는데 와 줄 수 있겠냐는 드니즈의 이웃 여자의 전화였다. 어딘가에 윌라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어서 보고 전화했다고 말이다. 사실 윌라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션과 드니즈는 이미 헤어졌고 드니즈의 딸은 션과는 상관이 없다. 한마디로 생판 남이다. 그러나 윌라는 왠지 자기가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넌무 무료해서 뭔가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윌라보다 열 살 많은 재혼남 피터는 은퇴한 변호사였는데 늘 윌라를 아기 취급하며 보호하려고 한다. 이번에도 왜 그곳에 가는지 모르겠다면서도 윌라와 동행하여 드니즈의 집까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온다.



이렇게 독특하면서도 서로를 돌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마을 사람들과의 삶이 시작되었다. 피터는 못마땅한 자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지만 윌라는 드니즈와 드니즈의 딸 셰릴을 돌보고 마을 사람들의 속사정와 이면의 모습도 알아가게 된다. 피터는 윌라를 못마땅해 하며 윌라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드디어 최후의 순간에 61년만의 주체적인 결정을 내리는데...



솔직히 윌라의 모습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 엄마 세대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바도 아니긴 하다. 지성적으로는 성숙한 반면, 마인드가 자기 뜻을 굽히고 시대와 가족의 기대에 순응하여 인생의 항로를 바꾸는 수동적인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싫은 이유는 그녀보다 적어도 다음 세대라고 할 수 있는 내 모습에도 그녀와 같은 모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적과 달리 냉담하고 독립적으로 변한 동생 일레인에 대한 바람, 성인이 되어 무심한 두 아들들에 대한 바람, 그리고 까다롭고 불만이 많아 다른 사람과 잘 못 어울리는 재혼 남편 피터에 대한 바람 등 모든 것을 마음 속으로만 바라기만 하고 주체적으로 상황을 바꾸거나 자기가 리드하지 않는다.



나 역시 상처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 결여로 늘 바라고 원하고 품지만 주체적이지 못한 것은 아닐까? 사람이란 모순적인 존재여서 나는 누가 날 좌지우지하고 조종 및 통제하는 것을 무척 싫어하고 민감하게 캐치한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는 이유로 내게 포기의 면죄부를 주기도 한다.



참 우연한 계기로 드니즈의 동네에 갔고 참 특이한 인물들이 모여있는 곳이지만 그곳에서 윌라는 자기의 존재가치를 느끼고 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자기가 있을 곳을 난생처음 스스로 정하게 된다. 언제라도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한다. 윌라의 나이 61세. 어찌 보면 자신의 거취를 정하기엔 늦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발달과업이라는 것은 남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움직일 때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맞은 윌라의 새 남편 피터의 입장에서 보면 기가 막힐 노릇이긴 하지만 둘이 어차피 여생을 같이 하기엔 맞지 않았다는 증거인지도 모르겠다.



《종이시계》도 무척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서 잔잔하게 삶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던 것 같았는데 이 책에서도 미국인들의 매일의 생활이 낱낱이 그려지는 가운데 각자의 인생의 주인공인 각 캐릭터가 서로 사랑하고 다투고 또 용서하고 자기 인생을 찾는 다이내믹이 참 백미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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