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말해줘
이경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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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김유정소설문학상을 수상한 이경 작가의 첫 장편소설로 디스토피아 색채가 짙은 한국형 SF 소설이다. 한국 문학을 많이 읽진 않지만 우리 문학계에 상당히 독특한 자리매김을 하는 소설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디스토피아 소재는 헐리우드 영화뿐만 아니라 영 어덜트 소설 등 영미권 문학의 중요한 한 분야가 된 지 오래인 것 같다.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를 그린다는 것, 그리고 독자 및 관객이 소비한다는 것은 그속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볼 수 있고 그것이 결국은 구원 없이 디스토피아 현실을 맞게 된다는 우울하지만 상당히 가능성 높은 말로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설 속에 등장시키는 인물, 사건 등이 어떤 메타포를 가지는지 파악하는 것이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 같다. 사실 그래서 내게는 좀 어렵게 느껴지는 면이 없지 않다. 이 소설은 SF 소설이라는 장르를 입고 있지만 『마션』이나 『인터스텔라』 같은 우주 과학적 지식이 필요한 책은 아니다. 재난적 상황에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찾는 것이 훨씬 중요한 것 같다.

각질이 온몸을 덮는 원인 불명의 피부병이 창궐하고 이미 감염되어 중증으로 진행되는 자들이 모인 할렘 같은 D 구역이 있다. 파충류 사육사였던 '그녀' 역시 이미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피부병 증상이 나타나는 자들을 수용하여 치료한다는 방역센터는 매우 수상스러운 곳이다. 일단 피부의 허물을 벗더라도 다시 재발하기 일쑤이고 이미 끌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도 부지기수이다. 그녀는 방역센터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이 병을 일거에 고칠 수 있다는 전설의 거대 뱀 롱롱을 찾아 나서고 롱롱이라고 생각되는 거대한 뱀을 찾았다. 롱롱이 허물을 벗기 시작하면 모든 사람의 허물이 벗겨진다는 소문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자 자신이 롱롱의 대변자이자 예언자인 양 행세하는 노파의 등장, 아무 근거 없이 그 노파를 따르며 롱롱의 곁에 머물고자 하는 사람들,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롱롱을 상품 디자인과 마케팅에 이용하여 한탕 해야겠다는 사람들, 불안과 공포를 이용한 보험사 직원, 그리고 이 재난 사태를 이용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사람들을 조종하고 심지어 피부병을 악화시키고 생체 실험까지 하는 경악할 과학자도 등장한다.

불안과 공포는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가장 본능적인 시그널이고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당연한 반응이다. 이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조종하고 자기 맘대로 부리는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 있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연약하기에 그에 넘어가는 것이다. 종교의 메타포라고 생각되는 롱롱, 그리고 자기 잇속을 챙기려는 거대 기업 및 제약사의 민낯을 보여주는 인물들을 보며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그 메타포를 제대로 파악했다면 말이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세상이다. 너무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정치판을 보더라도 이제 나는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입을 다물게 된다. 누군가 나를 이용하고 내 지갑을 털려 하지 않을까 늘 불안하기도 하다. 다른 사람의 불행은 나의 행복의 시작이라는 교활하고 저급한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한치 앞도 모르면서 남을 등쳐서 돈을 모은다 한들 무슨 유익이 있을까 싶지만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들도 있다.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더욱 주의 깊에 내 주위의 사건들, 그 사건들로 인해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현재 정계, 재계, 언론이라는 권력자들이 우리의 어떤 불안과 공포를 이용하고 있는지 분별을 하고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게 했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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