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샌디에이고 - 한국과 미국을 바라보는 이방인의 시선
복일경 지음 / 바이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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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을 바라보는 이방인의 시선.

나도 그런 시선을 조금은 맛봤기에 작가분들은 어떤 것을 느끼셨는지 궁금해서 이런 타 문화권 거주자의 에세이는 찾아서 읽어보는 편이다. 한국을 떠나 타국에 가서 처음에 그렇게 이상하더니, 타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니 이전에 익숙했던 한국이 또 그렇게 이상한 것. 그것이 이방인의 시선이고 누구나가 경험할 기회를 얻는 것은 아닌, 값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국비유학생인 남편과 함께 한창 정력적으로 키워가던 커리어를 포기하고 캘리포니아의 샌디에이고에서 10년여의 시간을 보내고 두 딸을 낳고 키운 후 귀국한 분이다. 정말 생생한 삶의 땀냄새가 묻어나는 에세이다. 나는 기껏해야 21살 때 교환학생으로 6개월, 33살 때 저자가 유령 비자라고 했던 F2 비자로 6개월 미국에서 지내본 게 다고 여행자 같은 기분이 없지 않아 있었기 때문에 뼛속까지 경험하진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정말 맞아, 그랬어!"라는 공감이 들고 그리움이 찾아오는 장면들이 있다.

라스베가스 여행 이야기가 그랬던 것 같다. 남편과 33살 때 시애틀에서 6개월을 살았을 때, 기왕 미국에 있을 때, 샌디에이고, LA, 샌프란시스코 등 캘리포니아 지역을 죽 돌아보고 싶었다. 일본에서 친구가 되어 평생의 친구가 된 친구가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어서 몇 년만에 너무 보고싶기도 했다. 남편과 내 저축, 회사 보너스를 싹싹 긁어갔지만 벌지 않고 쓰기만 하는 생활이었기에 아무리 견적을 내 봐도 캘리포니아 갈 여력이 되지 않았다. 반면, 라스베가스는 도박으로 돈을 벌기 때문에 4성급 이상의 좋은 호텔이어도 숙박비가 그리 비싸지 않고 비행기까지 묶어도 3박 4일에 둘이 합해서 500불 이상 되지 않았다. 고작 그 정도의 여력이었기 때문에 라스베가스 여행을 갔었는데 저자가 기록한 으리으리한 호텔들, 각종 쇼들, 그리고 뷔페를 즐길 수 있었다. 패키지를 끊으면 30불도 안 되는 비용으로 7개 호텔 부페를 돌아다니며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전 비수기여서 유명한 쇼들은 휴장 기간이어서 <Phantom>을 봤는데 정말 황홀했다. 비슷한 시기에 갔던 것인지 라스베가스는 원래 늘 그런 것인지 내가 경험했던 것과 너무 똑같아서 깜짝 놀랐고 반가웠다.

그리고 내가 두 아이의 엄마여서 그런지 육아에 관한 부분, 미국의 학교 시스템에 관한 부분들이 무척 도움이 되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유치원 과정인 프리스쿨의 엄격한 훈육, 책의 main topic을 중시하는 독서교육 등이 인상적이었다.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main topic 찾는 것은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 되면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될 것 같고 저학년까지는 favorite part를 중점적으로 독서교육으로 하면 좀 더 독서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학교 활동에 대한 학부모의 관여도가 인상적이었다. 정말 놀랄 노 자였다. 그렇게까지 물심양면 많은 것을 해야 하다니, 내가 미국에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다면 다 챙겨서 할 수 있었을까 겁이 나기도 했다. 우리나라와 조금 차이가 나는 부분인 것 같다. 그곳은 오랫동안 그런 문화였기에 맞벌이부모든, 한부모 가정이든 일정 정도 그런 관여가 가능하도록 직장에서 용납이 되는 걸까? 우리나라에서 녹색어머니회 논란만 보더라도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나도 좀 더 적극적으로 기여, 기부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을 조금은 하게 됐다.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을 좀 더 객관화할 수 있는 시각을 얻을 수 있었다. 결론은 나는 대한민국을 너무 사랑한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외국어나 외국 생활에 관심이 많았다. 중학교에 들어가며 a,b,c를 처음 접해봤지만 그래서 한계도 없지 않았지만 대학교에서도 199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그리 보편화되어 있지 않은 교환학생도 미국으로 다녀왔다. 친구들을 잘 만난 덕분인 것 같다. 선교사님이 지은 학교라 당시에는 가장 국제화 기반이 잘 되어 있었고 친구들 중에는 (참말인지, 변명인지 모르지만) 교환학생 가려고 S대를 안 가고 우리 학교에 왔다는 아이들이 있었고 그 아이들은 정말 입학하자마자 어학당에 다니고 토플 공부를 하며 착착 준비해갔다. 친구들처럼 똘똘하고 영특하지 못하고 어설프게 따라 하다 보니 그 아이들보다 토플 성적도 늦게 얻었고 많은 돈을 모아두지도 못하여 욕심부리지 않고 한 학기만 다녀왔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에 한국인이 거의 없었던 테네시 강이 흐르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공부하고 현지 교회를 다니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은 지금도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자산이다.

이후 김영삼 정권 때 우후죽순 생겨난 국제학대학원에서 일본 지역학을 공부하며 영어로 진행되는 모든 학과 과정 외에 일어를 배우고 그때까지만 해도 운 하나는 끝내주게 좋아서 연구 장학생으로 일본에서 1년 반을 보낼 수 있었다. 여러 경험을 하며 우리나라와 그 나라들을 비교해 보고 관찰도 해 보며 아쉬운 면이 어찌 없지 않겠냐마는 적어도 의료보험과 광속의 인터넷과 택배만으로도 난 이 나라를 떠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담이 아니다.

33살 때 남편과 시애틀에 갔을 때는 비의 도시 시애틀이 천국이 되는 8월이었고 난 정말 시애틀을 사랑했다. 어떻게 하면 이민을 올 수 있을까, 별 궁리를 다했다. 그러나 우리 첫 아이를 임신 26주 지나자마자 미숙아로 급작스럽게 낳게 되고 인큐베이터에 3개월 있고 이후에는 난치병 대상자로 5년간 따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다행이 아이는 미숙아 딱지를 빨리 떼고 건강해져서 그 혜택을 본 일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세계에서 거의 유일무이한 의료 선진국이라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나름 월급쟁이치고는 남편이나 나나 고액 연봉자였기에 매월 의료보험료를 보면 한숨이 푹푹 나왔지만 지금은 감사하며 낸다. 자격 없는 사람들이 편승하는 시스템을 대폭 개선하여 free-ride하는 사람들을 막고 재정 충실화를 기했으면 정말 좋겠다.

귤이 하수를 지나면 탱자가 된다고 했다. 남의 것이 아무리 좋아보여도 우리나라의 토양에 맞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균형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야무지고 통통 튀는 글솜씨로 책 읽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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