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문은강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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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프놈펜의 호텔 '원더랜드'의 주인 50세 고복희와 한 달 살기를 하러 원더랜드에 온 24살 의욕 없는 백수 청년 박지우를 중심으로 캄보디아 교민사회를 배경으로 온갖 군상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정체성 그리고 국민성이란 무엇일까? 그 작은 교민사회는 한국사회의 축소판으로 민낯을 드러낸다. 결코 유쾌하지 않은...

- 융통성이라고는 없고 로보트 같지만 죽은 남편이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살자는 말을 곧이곧대로 실천하기 위해 캄보디아에 와서 호텔을 차린 전직 영어교사 50세 고복희

- 죽도록 열심히 하면 정말 죽는다는 마인드의 24세 백수 청년 박지우

-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땅 장사로 돈 좀 벌었지만 조폭을 능가하는 야비한 김인석

- 선교를 목적으로 갔지만 주객이 전도된 듯한 야심가 사랑교회 목사 이영식

- 말을 더듬어 한국에서도 괴롭힘을 당하다 부모를 따라 와 김인석의 똘마니 노릇을 하지만 본심은 착한 청년 안대용

- 사업한다고 집안을 거덜낸 남편 대신 뛰어난 요리솜씨로 반찬 장사를 하여 가장 역할을 하지만 촉새에 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오미숙

- 똘똘하고 영특하고 한국말도 잘하는 원더랜드 현지 직원 린

- 유사 휘발유로 한탕 잡아보려다 패가망신하고 교회 화장실에서 자살한 최상민

큰 축은 바로 원더랜드의 부지를 둘러싹 갈등이다. 이영식 목사는 예배당, 운동장, 교육 공간, 보육 시설까지 갖춘 교회 건물을 원하고, 이영식 목사의 영성보다는 야심가로서의 면모를 꿰뚫어 본 김인석은 도와주겠다고 나선다. 만복회를 넘어서 한인회 전체를 손아귀에 넣어보겠다는 흑심이다. 오미숙은 어떻게든 교회 옆에 자그마하게 반찬가게를 내서 번창해보려고 교회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번개같이 나타나 나무를 심고 건물을 세워 호텔을 운영하게 된 고복희. 나긋나긋함이라거나 붙임성이라고는 없는 접객업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원칙주의자이다. 그래서 손님도 떨어져 나가고 파리만 날린다. 자기 월급도 못 받겠다고 하는 린의 기지로 한국에서 유행한다고 하는 '한 달 살기' 상품을 마지못해 내놓았는데 첫손님이 박지우다. 게으르기 그지 없고 앙코르와트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는 무대책의 20대 여성으로 고복희의 신경을 긁어놓지만 김인석 등의 꼰대들에게 대항해 고복희와 박지우는 묘한 조화를 보인다.

정말 톡톡 튀는 대사와 주변에 있을 듯한 캐릭터들이 환상적인 조합을 이루었다. 실은 고복희의 캐릭터와 내가 너무나 비슷한 점이 많아서 더 공감을 했던 것 같다. 고복희는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살지만 나는 늘 포장하고 유연한 척, 공감하는 척, 포용력 있는 척하고 살아왔기에 더 쾌감을 느꼈던 듯하다. 땅에 침 뱉는 사람, 담배꽁초 버리는 사람, 약속시간 10분 이상 늦는 사람 (사실은 1분이라도 늦는 것은 싫다^^;, 꼭 책을 갖고 다녀야 하는 이유이다, 기다리는 내 시간은 소중하니까...), 버스 옆자리에 자기 가방 떡하니 올려놓는 사람, 도서관 책에 줄 긋는 사람 등등 절대 이해 못하지만 다 이해하는 양 지내는 사람이 나다. 그건 그나마 나의 상식과 타인의 상식이 다르다는 지각이 있기 때문에 용납할 뿐이다. 40년 가까이 날 지켜봐 온 내 동생이 언니는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하다는 최고의 평가를 내려줬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다. 속으로 겁나게 욕한다.

고복희는 참 매력 있는 캐릭터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고복희가 처음에는 이상해 죽겠지만 나쁘진 않다고 선언하는 할 말 잘하는 박지우도 사랑스럽다. 이 둘은 의기투합하여 린의 언니 결혼식에서 깽판을 친다. 어찌나 멋진 반란인고. 그리고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고복희는 린이 한국에 가서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원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한국인들의 특성 중에는 '적어도 너보다는 내가 낫다'는 사고방식인 것 같다. 그 작은 교민사회에서도 서로가 내리깔고 밟고 올라서려는 민낯이 보여 마음이 너무나 괴로웠다. 미국에서 21살 때 반 년, 33살 때 반 년을 살았던 적이 있는데 미국까지 가서도 중요한 건 학부 학벌이었던 것 같다. 미국 현지에서 어떤 학교를 다니든, 무슨 일을 하든, 한국에서의 학부!!! 대학원도 아니고 학부여야 했던 것 같다. 그들끼리의 암묵적인 연대감과 우월감, 교회 안에서도 보였던 것 같다.

엄청 재기발랄하고 속사포처럼 전개된 중반부까지와 달리 후반으로 가면서 약간 흐름이 흐트러지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말을 더듬는다는 이유로 한국에서도, 또 캄보디아에서도 무시당하는 청년 안대용, 마음은 착하지만 지혜롭지 못했던 청년 안대용이 늘 종처럼 부려먹던 김인석에게 사람을 해치는 것은 나쁘다고 선언을 하고 린이 떠난 원더랜드를 고복희와 함께 지키는 희망적인 결말 매우 괜찮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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