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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어 문화 수업 - 플로리다 아 선생의 ㅣ 미국 영어 문화 수업
김아영 지음 / 사람in / 201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마도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글을 쓴다면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을 만났습니다. 장르를 굳이 구분하자면 '어학 에세이'랄까요? 이런 장르가 있는지는 모르지만요. 어학, 언어, 문화를 주제로 하는 에세이라고 정의를 내려보죠.
이전에도 김아영 저자님이 쓰신 『조금은 특별한 미국 보통 사람들의 영어』를 공부하며 제 스타일과 맞다고 느꼈었던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영어와 미국 문화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밝히신 에세이인 것 같아서 꼭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읽었던 어떤 에세이보다 저에게 깊이 다가왔습니다. 아마도 깨작거리는 수준이나마 영어를 공부해 왔고 1년도 안 되는 기간이지만 20년 전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생활해 봤고 저자님이 몸담고 계신 분야인 '외국인을 위한 영어 교수법(TESOL, TEFL)'을 단기과정으로나마 경험해 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책 속에서 저자님이 '이론'과 '경험'에 충실한 학습의 중요성에 관하여 역설하셨는데 이 책 역시 어학에 관한 다양한 이론과 함께 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경험 및 사례들을 제시해 주셔서 이보다 더 흥미로울 수 없었습니다.
Shared knowledge, shared views, shared patterns의 중요성
고지식할 만큼의 정직성의 상징 George Washington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한석봉과 어머니의 어둠 속의 배틀의 예시를 통해 한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지식, 가치관, 행동양식의 중요성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왕왕 이것들은 미국인 특유의 빈정댐(sarcasm)과 함께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좀 오래된 미드이긴 하지만 "길모어 걸스"를 예전에 봤었는데 유난히 sarcasm과 함께 무슨 말인지 모를 유머가 많이 나왔습니다. 일일이 찾아보니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둔 유머였지요. 그래서 꽤 어렵게 느껴지는 드라마로 기억됩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지요. 고유명사를 활용하여 sarcasm을 구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찾아보기는 귀찮지만 그렇게 하나하나 쌓이면 엄청난 저력이 되지요. 요즘은 정말 어학 공부하기 좋은 것 같습니다. 수많은 미국드라마와 뉴스, 원서가 있기 때문에 자기 노력 여하에 따라서 현지에 있는 것보다 더 콤팩트하게 많은 언어 지식을 습득할 수가 있습니다. 현지에 가서 나태하게 임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요. 물론 아는 만큼 보인다고 사전 학습을 충분히 하고 현지에 가서 현지인과 접하고 문화를 접할 수 있다면 그게 제일이겠지만요.
고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
명확한 언어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저맥락 문화, 말뿐만이 아닌 다른 요소들이 작용하는 것이 고맥락 문화입니다. 미국 등 서양권이 저맥락 문화라면 우리나라, 또 대표적으로 일본이 고맥락 문화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인들이 음험하며 겉과 속이 다르다고 얘기하시는 부분이 아마 고맥락 문화와 관련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일본에서 "그건 좀......"하고 말을 흐리거나 "생각해 보겠습니다......" 정도라면 거의 거절의 의미로 보면 됩니다. 이런 부분은 그 사회를 이해하기 전에는 좀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지요. 개인적으로는 저맥락 문화가 맞고 편안합니다. 뭔가를 막 마음에 품고 언어로는 명확히 얘기하지 않는 사람은 피곤합니다. 일본어에 察し(헤아림, 짐작)이라는 말이 있는데 상대방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찰떡같이 센스 있게 헤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글로벌 시대이니까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이런 반대가 되는 맥락의 문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어느 문화권에 가더라도 무난히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면 스트레스를 덜 받고 일도 원활히 인간관계도 풍성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술문법과 규범문법
기술문법은 표준어뿐만 아니라 사투리 등 많은 사람이 쓰는 문법을 인정하는 것이고 규범문법은 표준적인 문법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는 제가 언어를 구사할 때는 규범문법의 자세를, 타인의 언어를 이해할 때는 기술문법의 관점을 가집니다. 한국외대에서 TESOL 단기과정을 이수한 적이 있는데 외국인 교수님 중 한 분이 영어를 전 세계에서 쓰다 보니 원칙이 무너지는 영어가 정착되는 경우도 생길 것 같다면서 예로 '비교급'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1음절 등의 짧은 형용사는 뒤에 -er를 붙여서 비교급을 만들지요. cheap-cheaper 이런 식으로요. 좀 긴 형용사의 경우는 단어 앞에 more를 붙이지요. more expensive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형용사의 길이에 상관없이 more를 붙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서 몇 십 년이 지나면 -er 형태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게 저도 편하고 저도 모르게 more를 붙여 말을 하다가 수정하기도 합니다. 이건 전형적인 기술문법에 해당되겠지요. 그리고 책에서 보면 어린이들이나 저학력층의 대화문에 There's not nothing.이라는 문장을 드물지 않게 접한다. nothing만 쓰거나 not anything이라고 써야 한다고 배웠지만 실제 말하다 보면 그렇게 말하는 경우도 있는 거지요. 언어를 사용할 때 되도록 본연의 문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투리, 방언 등 독특하고 풍부한 언어의 형태들 역시 지켜주면 좋겠습니다.
미국 사회의 이슈들에 대한 관점
궁금하지만 정확히 몰랐던 이슈들에 관해 미국 시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찬반으로 실어주셔서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신혼 때 남편이 어학연수를 하고 싶다고 하여 시애틀에 몇 달 체류한 적이 있는데 얼마 전 뉴스에서 바로 그 학교 앞, 횡단보도 앞에서 총기 사고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매일같이 지나다니던 길에서 그런 참사가 일어나다니 일상을 위협하는 총기를 왜 엄격히 규제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총기 옹호단체의 로비가 대단한가, 영토가 넓어서 경찰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벽지의 주민들의 자기방어를 위해서인가 생각해봤습니다. 그 이유들도 있긴 하지만 총기를 소유할 '자유'의 관점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북미지만 미국인과 캐나다인의 관점 역시 달랐습니다. 이외에도 낙태, 백인 극빈층 문제, 장애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본 마인드 등 미국사회에 관한 담론이 생생한 인터뷰 내용과 함께 제시되어 신선했습니다.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몰랐던 내용들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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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배우고 책을 읽고 소통을 하는 것은 제 인생의 가장 큰 재미인데 참 근사한 책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끝이 없는 배움의 길을 오늘도 가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