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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심는 꽃
황선미 지음, 이보름 그림 / 시공사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아름다운 한 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본 듯 짧지만 마음이 촉촉해지는 이야기를 만났다. 나의 짧은 표현력으로 부족하기에 여러 가지 비유를 하고 싶다. 가령, 황순원의 <소나기> 같은 느낌도 나고, 어렸을 때 접했던 신지식 작가님의 <감이 익을 무렵>이라는 책도 생각이 날 만큼 풋풋하고 정겹다. 일러스트는 이와사키 치히로의 일러스트처럼 순수하고 맑고 투명한 수채화이다.
황선미 작가님의 고유한 창작물을 무언가에 빗댄다는 것이 송구스럽긴 하지만 그 작품들과 맥을 같이 할 만큼 내겐 순수의 시대, 유년시절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작품이었다. 물론 유년시절이라고 해도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작중에 시골은 내 유년시절의 무대는 될 수 없지만 외갓댁이 있는 전라남도의 농촌을 떠올리게 했다. 신작로에서 하얀 길이라고 불렀던 길을 따라 기와집이었던 외할머니댁에 걸어갔었다. 툇마루에 앉아서 멀리 내다 보면 시골 교회가 보이던 전원 풍경이 어린 눈에는 무척 낭만적이었다.
시골마을의 다부진 여자아이 수현이를 둘러싼 농촌마을을 쇠락의 기미를 보이는 쓸쓸함이 감돈다. 농사는 지어 뭣하냐며 수현이 친구 가족도 하나둘 마을을 떠나 도시로 나가고 수현이의 마음의 친구인 외삼촌도 서울로 떠난다. 굳이 그 마을을 찾아온 도시 사람들이 있다. 인동 덩굴이 아름답게 우거져 인동집이라 부르는 빈집으로 창백한 피부의 소년과 엄마, 아빠이다. 수현이의 학교로 오지만 남자아이는 친구들과 어울리려 하지도 않고 늘 결석을 한다. 난치병에 걸린 아이 때문에 이 가족은 시골을 찾은 것이었다. 그리고 수현이는 실수로 농구공으로 아이를 맞히고 만다. 그게 맘에 못내 걸렸는데 남자아이의 가족은 병원비가 마련되어 수술을 받으러 다시 서울로 떠났다. 죄책감에 시달릴 수현이에게 편지를 남기고 농구를 할 수 있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떠난다.
예전에도 어느 책에선가 인동꽃, 인동덩굴이 나왔었는데 이 책에 나오길래 한번 찾아봤다. 우리 아파트를 산책하며 어디선가 달콤한 냄새가 피어나서 냄새의 출처를 찾아 고개를 휘휘 젓다가 발견한 바로 그 꽃이었다. 흰색, 노란색, 자줏빛 꽃이 함께 무더기무더기로 피어 있던 곳이 인동꽃이었다. 사람에게도 그렇게 다디단 냄새로 코를 자극하니 당연하게도 벌들이나 온갖 벌레들이 모여들었다.
찾아보니, 꽃이 필 때는 흰색이다가 점점 노란색으로 변하여 금은화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한다. 이 인동덩굴이 무더기무더기 피어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그 향기로 인해 몽환적일까? 인동꽃을 모티브로 만든 인동무늬라는 것이 기왓장이나 처마에 쓰인다고 하니 꽤 전통적인 꽃인 것 같은데 오히려 현대에 들어서 보기가 힘든 것 같기도 하다.
이와이 슌지의 <4월 이야기>라는 영화가 이제 뭔가 시작되려나 했는데 끝났던 것처럼 이 책 역시 여운을 남기고 끝난다. 앞으로의 수현이와 서울로 가서 수술을 받게 될 민우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을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유년시절의 한 페이지처럼 아련하게 남아있다. 수현이가 서른 살쯤 되어 이 시절을 어떻게 추억할까 궁금해진다.
아름다운 그림과 글씨의 향연이 미술관이라도 산책하고 난 기분이다. 세계적인 작가님의 첫 시작이 되었다는 책이 참 풋풋한 설렘이 느껴져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