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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준비생의 런던 - 여행에서 찾은 비즈니스 인사이트 ㅣ 퇴사준비생의 여행 시리즈
이동진 외 지음 / 트래블코드 / 2018년 9월
평점 :
요즘은 소주 광고 하면 당연스레 청순한 얼굴에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가진 사랑스러운 여배우나 아이돌을 연상할 것이다. 마치 술이 아니라 진짜 이슬 같은 이미지를 전해준다. 90년대 후반, 2000년 대 초반에 학부 및 대학원을 다녔을 때, 고된 하루의 노동의 괴로움을 잊게 해 주는 도수 높은 노동자의 술, 서민의 술이었던 소주의 도수를 조금씩 낮추고 광고 모델로 한참 청순하고 한국적인 미인으로 주가를 높이던 이영애 씨가 기용되어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진짜 선녀가 마시는 이슬이라도 된 듯한 느낌을 자아낸 것이다. 기존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재구성'한 것이다. 그 이후, 아예 트렌드로 자리잡았지만 최초의 시도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이 책에서는 기존의 관점과 각도를 달리하는 '재정의',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가치를 '재발견'하거나 해오던 방식에 변화를 주는 '재구성'이라는 세 개의 꼭지로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제공해 준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철학 입문서로 손꼽는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서도 철학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 결과에 이르는 방법론, 사고의 과정에서 통찰력을 찾아야 한다고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이다. 저자들이 소개하는 각각의 사례들은 '귤이 회수를 건너 북쪽으로 오면 탱자가 된다'는 말처럼 우리나라의 환경에는 100%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 런던이라는 도시에서 저자들이 소개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흥하게 된 아이디어, 인과관계, 역학관계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재정의
기존 업의 정의, 업계의 상식을 깨고 성공적으로 사업을 궤도에 오른 곳들이 있다.
책이라는 상품을 재정의하여 초판본, 저자 서명이 담긴 '희소성'을 가진 상품인 책을 파는 '골즈보로 서점',
고가의 헬스기구로 무장하여 원가를 뽑으려고 고액 혹은 장기 계약으로 유도하는 헬스클럽이 아니라 각자에게 알맞는 '운동 솔루션'을 제공해 주는 것으로 재정의한 '바디즘',
고가의 주방용품보다는 일상의 요리에 즐거움과 편리함을 더해 주는 주방용품 업체 '조셉조셉'
재발견
영화를 단순히 '관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영화를 '경험'하는 새로운 가치를 재발견한 '시크릿 시네마',
벨기에 초콜릿 등으로 대표되는 초콜릿의 가치를 원재료 카카오에서 발견하고 원산지 아프리카를 주목하고 아프리카 풍으로 꾸민 '다크 슈가즈',
미술용품의 기존 고객인 전문가에서 초보자라는 보다 넓은 새로운 고객층을 발견하여 미술을 저변으로 확대하려는 비전을 가진 '카스 아트',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잡지의 영역을 발견한 '모노클'와 '더 모노클 카페'
재구성
패션의 다양한 장르와 영역을 재구성하여 하나의 멋진 편집숍을 만들어낸 LN-CC,
포도의 산지와 제조지가 같아야 한다는 통념을 깨고 산지와 제조지를 재구성한 와이너리 '로버슨 와인',
5성급 호텔의 고급스러움과 3성급 비즈니스 호텔의 효율성을 재구성, 결합한 시티즌M 호텔
인상깊었던 몇 가지만을 소개했다. 전체적인 인상은 우리나라보다 국민소득이 높은 성숙한 경제사회에 접어든 런던의 사례들이어서 그런지 사례가 대부분 하이엔드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하이엔드 비즈니스 같다는 인상이 들었다. 점점 비즈니스라는 것이 양분화되는 것 같다. 소비를 통해 '나는 너희들과 달라'를 주장하고자 하는 고객들과 '가성비'가 가장 중요한 실속파 고객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규직, 비정규직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비즈니스가 호응을 받을지 모르겠다.
네 명의 공저자들은 국내외 유수의 기업과 전략 컨설팅 회사에서 잔뼈가 굵어온 전문가들이다. 그렇기에 같은 것을 보고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저자들은 단순히 도로변에 있는 매장을 보고 그저 지나치지 않고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그것을 분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네 명 모두 필력이 장난이 아니다. 분석적, 논리적이면서도 지루함을 느낄 새 없이 흥미롭게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다.
퇴사하기 전에 이 저자들의 시리즈물 《퇴사준비생의 도쿄》, 《퇴사준비생의 런던》, 《퇴사준비생의 베이징(출간 예정)》, 《퇴사준비생의 타이페이 (출간 예정)》을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회사를 전혀 관둘 예정이 없는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불가항력적으로 퇴사하게 되면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방황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름대로의 내 진로를 찾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아쉽다. 그리고 퇴사 전 남편과 6개월 시애틀에 거주하면서 이 저자들 같은 마인드와 지식이 있었다면 <퇴사준비생의 시애틀> 한 권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시답지 않은 생각도 해 본다.
한편으로, 선진국, 대도시만큼 개발도상국의 한참 부흥하는 도시, 중소도시도 다뤄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성숙한 도시의 평균소득 4만불 이상 되는 곳과는 또다른 인사이트가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 퇴사준비생 시리즈 앞으로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