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밖의 경제학 - 10주년 기념판, 이제 상식에 기초한 경제학은 버려라!
댄 애리얼리 지음, 장석훈 옮김 / 청림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여년 전에, <괴짜 경제학> 시리즈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책도 비슷한 맥락의 행동경제학 책이다. 작년(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넛지>의 저자 리차드 탈러 교수도 행동경제학자이다. 인간이 완전히 이성적이며 의사결정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경제학의 대전제가 얼토당토않은 비현실이라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책에는 경제학적 결정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많은 의사결정에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정보들이 많다. 인간의 비이성적이지만 일정한 규칙성과 일관성을 가지고 나타나는 인류 공통적인 특성이므로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데도 매우 유용한 것 같다. 저자가 제시하는 특징들이 내 삶에 여실히 나타난 것들을 떠올리며 실소가 터지기도 했고 무릎을 탁 치게 되기도 했다. 몇 가지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비교를 좋아하는 사람들
: 사람 속에는 어떤 것의 절대적인 가치를 가격으로 측정할 수 있는 천부적인 기제가 없으므로 비교 대상이 있을 때 판단의 근거로 삼는다. 가격대가 여러 개 있을 경우 중간 정도의 가격대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한다.

가족 식사를 할 때, 부모님의 40주년 결혼기념일, 아빠의 칠순 축하 등의 특별한 행사일 경우에는 가격대 중에서도 최고급을 선택한다. 가령, 조선호텔 뷔페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생신이나 가족 모임에서는 한정식이나 중식 코스에서 최고보다 한 단계 아래 정도의 코스를 항상 선택해 왔다. 왜냐하면 가장 비싼 코스에는 우리가 택한 코스에 한두 가지 특이한 요리가 추가되었을 뿐, 식사에 대한 만족도는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추가 비용을 더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공짜의 거역할 수 없는 마력
: 15센트짜리 린트 초콜릿과 1센트짜리 허쉬 키세스를 선택하는 비율이 7:3이었는데 1센트씩 할인하여 14센트, 0센트(즉, 공짜)가 되었을 때 같은 비율이 아니라 4:6 정도로 공짜 초콜릿을 선택하는 비중이 커졌다.

공짜의 거역할 수 없는 마력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원하지도 않는 물건들을 많이 구입하는가? 온라인 서점인 알라딘에서 포인트를 차감하여 주는 알라딘 굿즈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명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결코 귀가 얇지 않고 마케팅 상술에 잘 넘어가지 않는 나조차도 단 한 번이긴 하지만 알라딘 굿즈에 혹했던 적이 있다. 바로 올해 여름 대히트를 쳤던 '책라디오'이다. 사실 이건 공짜도 아니다. 이벤트 대상 도서를 포함하여 5만원 이상 책을 사야 하고 또 포인트를 몇 천 점 차감해야 받는 굿즈였음에도 불구하고 재화가 주는 감상적인 요소를 무시하지 못하고 결국 5만원 이상 책을 끌어모아 구입하여 라디오를 받았는데 그야말로 이건 '예쁜 쓰레기'이다. 소리는 찌직거려서 쓸 수도 없고 다른 지인 말로는 고장도 잘 나고 고치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그래도 예쁘긴 하다.)

이 부분을 꼭 적용하고 싶은 부분이 65세 이상 고령자 무료 전철 표이다. 우리 부모님도 모두 65세 이상이고 고령자 혐오에서 이런 생각은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 500원, 단 200원이라도 값을 지불하고 표를 받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경제력이 없는 고령자를 위한 복지로 이동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것은 무척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남용과 악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금액을 필히 징수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사회 규범 vs 시장 규칙
: 장모님의 근사한 저녁 대접에 감사하다며 사위가 돈을 지불한다면 장모님의 얼굴이 일그러질 것이다. 또한 퇴직자를 위해 저렴한 비용으로 법률 상담을 해 달라고 하면 변호사는 거절할 것이지만 무료로 해 달라고 하면 흔쾌히 수용한다.

예전에 회사에 다닐 때 함께 일하던 부서에서 나와 자주 일하던 담당자가 꽤 어려운 영어 문서를 번역해야 했던 일이 있다. 법률 문서에 준하는 약관이었기 때문에 만만한 작업은 아니었다. 나 역시 주 7일 근무하며 괴로워하던 때였지만 그 동료가 부탁해 왔을 때 흔쾌히 하룻밤을 머리를 쥐어짜며 해서 주었다. 그 동료는 어차피 회사 일이고 나도 아주 관계가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 건지, 별다른 감사의 말을 듣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끝냈다. 그 부분은 사회 규범, 즉 동료가 부탁을 했던 부분이었기 때문에 돈과 상관없이 할 수 있었다. 지금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대표적으로 임금이 박한 분야에서 '을' 입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정말 심정이 괴로울 때가 많다. 내 노동과 시간의 대가가 이 정도인가? 누군가 부탁을 하거나 '자원봉사'로 일을 할 때는 그것이 명분이 되기 때문에 그리 마음에 저항감이 없으나 시장규칙에 의해 값이 매겨지는 일을 하다 보면 여간 마음이 부대끼는 게 아니다. (그래도 내 책값, 아이들 간식값 정도는 충당하고 싶기에 열심히 한다.)

포기할 수 없는 다른 가능성
: 사람들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도 가능하면 많은 문을 열어두고자 한다. 배수진을 치려 하지 않는다. 어장관리 하는 사람들의 심리이다. 돌아갈 다리를 끊으려고 하지 않고 다른 가능성을 '보험'처럼 항상 확보한 채로 있고 싶어 한다.

회사에 다닐 때 나의 주요 업무들이 있었지만 영어와 일어를 인증시험 900점 이상으로 가능한 나의 역량은 꽤 유용했다. 가끔이지만 필요할 때 남의 도움 없이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다. 무작정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건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회사를 그만두고 두 언어 모두를 잡아야 할지 어느 한쪽을 택해서 프리랜서 일을 찾아봐야 할지 고민이 됐다. 가능성을 완전히 끊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나의 이 고민이 다른 가능성을 끊어야 하는 영역인지는 모르겠다. 둘 다 어느 정도 병행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전업주부라는 입장상 노력만 하면 두 가지를 갈고 닦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기대감과 고정관념
: 어떤 것에 대한 기대감, 비록 포장되어 있는 고정관념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그런 것을 품으면 음식 맛도 더 좋게 느껴진다.

이에 맞는 예를 바로 책을 읽으면서 발견할 수 있었다. 예전 회사 후배와 오랜만에 만날까 하고 카페를 검색했다. 그런데 검색어로 '손열음 케이크'라는 게 뜨는 것이다. 좋아하는 젊은 예술인이기에 클릭해 봤다. 강남의 어느 카페의 케이크에는 모두 음악인들의 이름이 붙여져 있는 것이다. 생크림 케이크가 아니라 손열음 케이크, 무화과 타르트가 아니라 줄리니, 블루베리 치즈 케이크가 아니라 아바도 등등. 다른 빵류에는 미술가들의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이다. 뭔가 케이크에서 음악이 흐르고 빵에서 화려한 색채가 펼쳐질 것 같은 상상을 자극하는 것이다. 맛이야 어떻든 그 발상에는 무릎을 탁 쳤다. 다만 생크림 케이크와 손열음... 제대로 된 매치인지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팬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남다른 감성과 정열의 소유자로 피아니스트 손열음 하면 왠지 붉은 색이 떠오른다. 빨간색 코팅이 위에 반짝반짝 입혀진 산딸기 무스의 비주얼과 매치가 되는데, 나만의 생각인가??? 손열음 씨에게 물어보고 싶다.

어쨌든 이외에도 읽으면서 존재할 것이기에 정말 재미있게 자신을 분석해 가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정통 경제학에 관한 지식을 얻으려 하는 독자들에게는 이단과 같은 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을 이해하고 그들의 의사결정, 그 중에서도 돈이 나가는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인 경제 및 소비활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없이 좋은 책인 것 같다. 10년 전에 나온 책의 개정판인데 정말 개정판이 나올 만큼 좋은 책 같다.

그리고 10대 후반이라는 가장 민감한 시절에 온몸에 3도 화상을 입어 3년 간의 고통스러운 화상 치료, 이후 5년 동안도 후속 치료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도 이렇게 지성의 대가로 우뚝 서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에 대해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