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늑대의 피
유즈키 유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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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이미 절판된 책 한 권 (《최후의 증인》)만이 소개되었지만 일본에서는 유명한 추리 작가로 많은 수상 이력이 있는 유즈키 유코 작가의 작품을 처음으로 읽어 봤다. 우리나라의 일본 추리소설 붐을 타고 《고독한 늑대의 피》가 번역, 소개되어 무척 반갑다.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작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면 유즈키 유코 작가는 2008년, 《임상진리 (미번역)》으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을 수상, 2016년 이번에 읽은 《고독한 늑대의 피》로 제 154회 나오키상 후보작에 오르고 제 69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바 있다. 올해, 2018년 4월, 《반상의 해바라기 (미번역)》로 일본 서점대상 2위에 오르기도 했다.

1992년 폭력단 대책법 시행 전, 야쿠자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는 1988년, 히로시마의 폭력 조직들과 그 상부 조직의 대치 상황에서, 일반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마리 외로운 늑대와 같은 외고집 형사 오가미와 그의 등을 보고 점점 그를 닮아가는, 아직은 어설프고 풋내 나는 정의감 넘치는 신참 형사 히오카 슈이치의 이야기가 히오카의 서술로 전개된다.

이렇게 선이 굵은 정통 느와르 경찰소설은 거의 처음 만나보는 것 같다. 세기말 홍콩의 느와르와는 또 다른 느낌의 일본 느와르이다. 야쿠자 조직들과 그들을 견제하며 때로는 정보를 얻어가며 단속에 나서는 경찰 조직들이 하도 복잡하여 앞에 제시해 준 조직도 혹은 계통도를 보며 또 따로 메모해 가며 전체 그림을 파악해 갔다. 460페이지 정도 되는 짧지 않은 책인데 절반 정도까지는 앞을 넘겨가며 천천히 읽다가 전체 상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니 나머지 절반은 책장에 날개 달린 듯 휙휙 넘어갔다.

야쿠자와 경찰 조직 사이를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오가미와 그런 오가미가 못마땅하지만 충성스럽게 따라 다니는 히오카의 케미도 좋았고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익살스러운 대사들도 좋았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이, 경찰 조직 내에도 적이 있고, 그래서 고독한 한 마리 늑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오가미에 인간적인 애잔함도 느꼈다. 책을 읽다 보면 진짜 뭐가 정의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의 기록이 승자의 기록이듯 정의도 승자가 결정하는 승자의 정의는 아닌지...

다른 독자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두 번 놀랐다. 첫 번째는 "어어, 주인공은 이러면 안 되잖아요, 이럴 순 없잖아요! 뭔가 잘못된 거죠?"를 외치며 심장이 쿵 내려앉은 때였고 다른 한 번은 1장에서부터 죽 나오던 몇 줄씩 삭제된 히오카의 일지의 정체를 알게 됐을 때다. 허탈감과 감동이 동시에 밀려오는 복합적인 여운을 안고 책을 덮었다.

속편 《불길한 개의 눈 (미번역)》이 올해 3월말에 일본에서 출간됐다. 여기서는 폭력단 대책법 통과 직전, 히오카가 한직으로 밀려나 있다가 사건에 연루되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일본 아마존 독자 사이에서는 《고독한 늑대의 피》보다 평점이 높다. 기대감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번역본 나오기 전에 읽어봐야 하나 고민된다.

《고독한 늑대의 피》를 원작으로 동명의 영화도 제작되어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호평을 받기도 했다. 고독한 늑대 오가미 쇼고 역할은 《쉘위댄스》에서 춤바람 났던 아저씨 야쿠쇼 고지가, 신참 형사 히오카 슈이치는 요즘 핫한 신예 마쓰자카 도리 (마츠자카 토리) 가 맡았다. 마쓰자카 도리는 히오카 슈이치에 100% 싱크로율을 보이는 것 같다. 영화를 안 봐서 모르겠는데 책을 읽으며 나는 고독한 늑대 '오가미' 역으로는 와타베 아츠로를 생각했다. 야쿠쇼 고지 씨가 워낙 연기파니까 잘했겠지만 극중의 연령과 거의 15세 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아서 어떨지 좀 궁금하다.

이렇게 선이 굵은 폭력단과 경찰 이야기를 여성 작가가 쓴 것도 대단하다. 유즈키 유코 작가의 책들을 많이 찾아 읽을 것 같다. 오타 아이 작가와 함께 최근 발견한 애정 작가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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