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셰익스피어의 희곡 몇 편을 이야기로 축약해 놓은 책을 읽곤 했다. 비극보다는 희극이 어찌나 재미있는지 읽고 또 읽곤 했다. 이번에 일은 <좋으실 대로 (기존 번역본들의 제목은 <뜻대로 하세요>이다)>와 <십이야>는 정말 푹 빠져서 읽었었다.그러고 중학생이 되어서는 희곡으로 읽었다. 셰익스피어의 심오하고 폭넓은 언어의 세계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역시 상황의 유쾌함과 말장난이 정말 재미있었다.이번에 만난 《좋으실 대로》는 정말 오랜만에 만난 셰익스피어였다. 실은 작년에 셰익스피어 희극 네 편을 다른 번역으로 샀는데 영 읽히지 않았다. 이번 외대출판사에서 나온 셰익스피어 전집에 속한 《좋으실 대로》는 정말 이대로 바로 무대에 올려도 될 만큼 자연스러운 구어체, 대화체, 언어 유희가 살아있는 걸작이었다. 번역의 승리라고 말하고 싶다.권력의 암투와 가족 간의 분쟁, 인간의 시기와 질투 같은 인간의 어두운 면과 동시에 의리와 충성을 지키는 고매한 정신과 살을 에는 추위가 있는 숲속에서도 자족하며 평화를 추구하며 사는 순전한 마음, 사랑을 추구하고 화해하는 선량함이 대사 하나하나 속에 녹아 있다.전임공작: 보다시피 우리만 불행한 것은 아니다.이 넓디넓은 세계라는 무대에선 우리들이 연기하는 장면보다 훨씬 더 비참한 연극이 공연된다.제이키즈 : 당신의 최대 결점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이오.올란도: 그 결점을 당신의 최고의 장점과도 바꾸지 않을 거예요.네 쌍의 남녀가 첫눈에 반한 사랑이기도 하고, 때로는 일방이 끈질기게 굴욕적으로 구애하고 일방은 끈질기게 거부하기도 하고 또는 본능에 충실한 사랑이기도 하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한번에 모든 갈등이 해결되고 해피엔딩이 되는 그 유쾌함. 그 안에서 권력투쟁으로 인간성을 버렸던 자들이 회심하여 모든 것이 모든 사람이 아름답게 제자리로 돌아가는 쾌감.감초같이 등장하는 살아있는 캐릭터를 가진 조연들의 말장난과 그속에 숨겨져 있는 해학과 인생의 진실.다시 읽은 셰익스피어는 정말 감동이었다. 무려 400년의 시간을 초월하여 인간이 사는 모습의 보편성을 보여준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구약성경의 전도서의 말처럼 그 시대의 모습이 그대로 이 시대에도 재현되고 있기에 더욱 공감의 폭이 컸던 것 같다.일본의 작가이자 러시아어 통번역가인 故 요네하라 마리 씨는 번역에 대한 에세이 《미녀냐 추녀냐》에서 직역에 충실한 추녀 같은 번역, 의역에 충실한 미녀 같은 번역에 대해 논하고 있는데 나는 절대적으로 읽는 사람이 이해하기 편한 '미녀'같은 번역을 선호한다. 어려서부터 읽히지 않아 책장 넘기다 덮어버린 책이 한둘이 아니었고 그래서 책을 원어로 읽겠다는 의지가 생겨 외국어를 열심히 파고들었다. 셰익스피어의 대작을 이렇게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접할 수 있어서 감지덕지였다.《말괄량이 길들이기》, 《십이야》도 어서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