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과 정의의 여신 테미스는 왼손에는 천칭을,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일본 드라마에서 종종 봤던 것 같아 이미지를 찾아봤다. 책의 표지에도 나와 있다.러브호텔들이 밀집해 있는 구역의 부동산에서 강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용의자로 떠오른 청년은 계속 부인하지만 억압적이고 위압적인 취조에 의해 청년은 혐의를 인정한다. 검사는 경찰이 제시한 증거품과 수사 기록을 근거로 그를 기소하고 재판에서 그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는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며 형무소 내에서 자살한다.그로부터 5년 후,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이는 강도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유력 용의자가 지목된다. 취조 끝에 그는 두 건의 범행을 모두 인정한다. 한편, 이번 사건과 5년 전 사건에 관여한 형사 와타세는 5년 전의 사건도 동일범의 소행이 아닐까 하는 공포스러운 직감을 한다. 만약 그렇다면 5년 전 사건은 원죄 (누명) 사건이 된다. 게다가 사형 선고를 받았던 당사자는 자살하여 이미 세상에 없다. 그러나 와타세의 직감은 딱 들어맞는다. 와타세는 어둠 속에 묻으라는 조직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고 이 원죄 사건을 세상에 알린다. 그가 신뢰하는 검찰과 판사는 일신의 보존을 버리고 진실의 규명에 협조한다.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되지 않는다. 23년 후. 무기 징역 선고를 받았던 범인이 모범수로 석방된다. 그러나 출소 후 채 몇 시간이 지나기 전, 그는 공중화장실에서 칼에 찔려 죽는다. 그러고 나서 밝혀지는 추악한 진실...역시 믿고 보는 작가님이다. 450페이지 정도의 장편소설인데 몰입하여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경찰, 검찰, 법원 등 사법조직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원죄 (누명) 사건에 대한 문제 제기, 제4의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언론의 돈 냄새 나는 저속한 행태 그리고 근본적으로 인간의 죄악과 탐욕에 대해 칼끝같은 펜으로 서슴지 않고 비판을 퍼붓는다. 그러나 와타세 경부라는 외골수와 고엔지 시즈카라는 양심적인 법관을 판도라의 상자 속에 남은 최후의 희망으로 그리고 있다. 고엔지 시즈카라는 일본의 20번째 여성 재판관이 무척 낯익다 했더니 나카야마 시치리 작가님의 다른 작품 《시즈 할머니에게 맡겨 (미번역)》에 나오는 인물이었다.이 작품의 주인공은 고엔지 시즈카의 손녀 마도카이다. 교통사고로 양친을 잃은 마도카는 시즈 할머니와 생활하고 있는 여대생이다. 그녀는 할머니를 롤모델로 법조인을 꿈꾸고 있다. 우연한 계기로 경찰 수사를 돕게 되는데 모든 정황을 듣고 집에 와서 할머니에게 얘기하면 할머니는 안락의자에 앉아 듣기만 하는 걸로도 사건을 해결한다. 깜짝 놀랄 반전도 마지막에 나오는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 《테미스의 검》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와타세 경부와 마도카가 고엔지 시즈카 판사의 묘 앞에서 만나는 장면도 나와서 깨알 같은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요즘 가장 핫한 일본 추리소설가 중 한 명이기에 이 책도 분명히 번역본이 나올 것 같아서 더욱 기대된다.40대 후반의 결코 이르지 않은 나이에 데뷔하여 엄청난 속도로 신작을 발표하는 왕성한 집필력을 보여주는데 한 작품 한 작품 허술한 면이 없다. 《보호받지 못한 자들에게 (미번역)》이라는 작품도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21세기 세계 제3위의 경제대국 일본에서 굶어죽는 사람들의 존재와 복지제도 (특히 생활보호제도)의 맹점을 신랄하면서도 처절하게 그려냈다. 이 작품도 꼭 국내에 선보이길 바란다.본격 형사물이자 사회파 소설인 《테미스의 검》은 나카야마 시치리 작가의 진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