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래빗 전집 (양장 스페셜 에디션)
베아트릭스 포터 지음,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5월
평점 :
품절


자그마한 크기의 깔끔한 양장으로 베아트릭스 포터의 23개 작품을 모아놓은 원서를 몇 달 전엔가 사 두고 읽지 않고 있던 차에, 영화도 개봉한다고 하고 한글 전집이 미출간본까지 포함하여 발간되었다. TV 애니메이션으로도 가끔 아이들과 본 적이 있어서 내가 피터 래빗 전집을 무척 잘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이야기를 읽어나갔다. 하나하나 이야기를 읽어갈수록 놀라운 관찰력을 발휘하여 인간세계에서 관찰한 바를 동물이라는 등장인물들을 빌어 있는 그대로 표현한 문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동심으로 본 환상의 세계의 아름다운 이야기라기보다 선악의 공존, 약육강식의 냉혹한 세계, 자신의 이득을 위해 속이고 또 어리석게 속는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나온다. 그안에도 안도감을 주는 것은 선량하고 지혜로우며 때로는 눈치가 빠르고 정의감이 있어서 구원의 손길이 닿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권선징악을 들이미는 것도 아니고 각자 생긴 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인간은 인간이니까 동물을 잡아서 먹기도 하고 동물들 속에도 다양한 캐릭터가 존재한다. 2차원적으로 선과 악으로만 구분지을 수 없는 다양하고 독특한 캐릭터들이 살아 숨쉰다.

전집 제목이기도 한 《피터 래빗 이야기》의 피터 래빗은 호기심 왕성하고 모험을 좋아하지만 무모한 토끼다.

《다람쥐 넛킨 이야기》의 버릇없는 다람쥐 넛킨은 올빼미인 브라운 할아버지를 무시하고 농락하다 혼쭐이 나 꼬리까지 잘린 채 삼십육계 줄행랑을 친다.

《톰 키튼 이야기》의 새끼 고양이들의 엄마는 고양이들이 손님맞이용 옷을 장난을 치다 더럽히자 손님 보기 창피하다고 새끼 고양이들을 위층에서 내려오지도 못하게 한다. 너무 리얼하다.

《오리 제미마 이야기》에서는 지혜가 부족한 오리 제미마를 속이는 여우가 나온다. 제미마는 길에서 만난 말쑥한 신사의 매너와 배려에 속는다. 자기를 잡아먹으려 하는 것도 모르고 오리를 구울 때 쓰는 허브를 따기도 한다. 그걸 알아챈 목장견 콜리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통구이가 되었을 것이다.

《진저와 피클 이야기》에는 심지어 경제 원리까지 엿볼 수 있다. 외상으로 물건들을 규모 없이 파는 가게와 외상 절대 사절인 가게가 있다. 외상으로 마구 주는 가게는 결국 파산하고 독점 상황을 이용하여 남은 가게는 물건 가격을 올리고 외상은 더욱 철저히 거절한다.

어찌 보면 동심 파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아이들은 선하고 착하기만 한 이야기보다 더욱 좋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말썽꾸러기 주인공들을 보며 감정이입하여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고 주인공들의 위기에 같이 가슴 졸이기도 하며 구원의 손길에 안도하기도 할 것이다.

또한, 어른들은 정겨운 삽화와 함께 인간들의 모습을 보였다 꼬집은 이야기들을 읽으며 실소를 자아내고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조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장 맘에 들었던 건 힘이 약하여 재봉일의 마감을 맞추지 못할 위기에 처한 늙은 재봉사를 대신하며 작은 생쥐들이 정교하고 멋진 옷을 지어놓은 《글로스터의 재봉사》와 깔끔하고 온정 넘치는 세탁부 아줌마 (알고 보니 고슴도치)와 소녀 루시의 이야기를 그린 《티기 윙클 아줌마 이야기》였다. 현실에 기반한 무한 상상력 발산이다. 따뜻하고 포근하고 사랑스럽다.

'베아트릭스'는 영국 상류층에 많던 예스러운 이름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음을 이름에서부터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저자가 힐탑 농장을 구매한 레이크 디스트릭트라는 곳이 무척 궁금하다. 그 자연이 저자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끌어내는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구글링해서 찾아본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과연 포터의 작품의 무대가 될 법한 아름다운 곳이다.

《해리 포터》처럼 피터 래빗 이야기도 수많은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했다고 한다. 굴하지 않고 될 때까지 도전한 그 정신이 대단하다. 그랬기에 오늘날 우리가 이 독특하고도 사랑스러운 그림책들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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