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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4
조라 닐 허스턴 지음, 이미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하는님은 인간을 만드실때 항상 노래하며 온통 반짝거리는 재료로 인간을 만드셨다. 그러나 그 후 몇몇 천사들이 질투심에 사로 잡혀서 인간을 몇백만 개의 조각으로 산산조각을 내버렸지만 인간은 여전히 반짝거리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래서 천사들은 그것을 부수어 불티들로 만들어버렸지만 각각의 작은 불꽃 모두 반짝거리며 노래했다.
그래서 천사들은 각 불꽃을 진흙으로 발라버렸다. 불꽃들은 외로움 때문에 서로를 찾아헤맸지만 진흙은 귀도 멀고 말도 하지 못했다. 굴러다니는 다른 모든 진흙덩이처럼 재니는 자신의 빛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127~128)
오래전에 어디선가 소개된 이 책의 제목을 기억해 둔 적이 있었는데 그당시 국내에는 번역이 되어 있질 않아서 찾는것을 그만두었다.
그러다가 이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움에 읽어보았다.
책을 읽기전 어떤 책에 대한 기대와 나름대로의 추측을 다소 가지고 읽기 시작하는데 이 책은 내가 예상한거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쓰여졌다.
대부분 흑인여성이 쓴 책이라 하면 흑인여성의 억압받는 비참한 삶이라던가 부당한 대우 등을 촛점을 맞추어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이 책은 그런 관점과는 조금 멀다.
그래서 이 책이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지도 모른다.
극단적으로 비관적이지도 절망적이지도 않은 그런 시선으로 흑인사회상을 담담히 그려내었다.
오히려 흑인사회에서 자신들의 상황을 그대로 수용해서는 백인들을 그들의 신처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들은 자신의 판단보다 백인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 그들이 내린 결정은 무언가 남다르다는 뿌리깊은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말이다.
나는 이책의 소개글에서 도한 오류를 발견한다.
"흑인여성문학의 선구자 조라 닐 허스턴이 그려낸 억압받는 한 흑인 여성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
란 문장에서 오히려 흑인여성에 대한 차별이 보여진다고 생각한다.
"백인여성문학"이라고 표현하지 않는 것에 비하면 굳이 흑인여성이란 말이 붙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백인이든 흑인이든 한 사람의 작가로 보아야 객관적인 판단을 할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해본다.
조라 닐 허스턴이 그린 재니의 삶은 한 여자의 삶을 세가지 과정을 통해 보여주면서 그녀가 남자에 대한 온전한 사랑을 찾아가는 것을 보여준다.
첫번째 결혼은 자신을 지켜줄수 있는 삶을 위해 사랑없는 무미건조한 결혼생활에서 오는 막막한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두번째 남자인 조를 택한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한사람의 인격체로 대하기보다 그의 소유물로 자기 안에 가두어 억압하도록만든다.
조가 죽은뒤 세번째로 만난 티 케이크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한 남자로써 그녀가 꿈꾸던 사랑을 이루게 만든다.
사랑의 과정을 세단계로 보여 주면서 어떤 사랑이 진정한 것인가를 작가는 말하고 있다.
안락함, 풍요로움, 진정한 사랑 이 세가지 중에 어떤 것을 자신의 삶의 기반으로 하는가에 따라 삶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라는 "흑인여성작가" 라는 밀을 붙일 필요가 없다 그녀는 한사람의 작가이며 인류에대해 진정한 사랑에 대해 그려낸 작가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