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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노신 지음, 이욱연 옮김 / 창 / 1991년 3월
평점 :
절판
루쉰 산문집(이욱연 편역/ 도서출판 窓(1991.3.25 초판 발행), 244쪽
이 책은 2년전 마치 책제목처럼 헌책방 순례도중 우연히 제목에 끌려 펼쳐본 순간 '노신'이라해서 어떤 분인가 들여다 봤더니 바로 '루쉰'을 20년전에는 그렇게 불렀나보다.
그순간 20년전에 발행한 책(아침꽃)을 바로 이순간(저녁)에 해우하다니 하는 감동과 설레임으로 조심스럽게 주워 품에 안고 왔다.(독자는 이럴때 가장 기쁘다 수많은 세월을 거듭하여 내 손으로 오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감동받지 않을수 없다.)
그후 2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책장에 숙성을 시키던중 어느날 책과의 조우가 시작되어 약 2개월 동안 천천히 읽었다.
발문은 이영희 선생님이 쓰시고 편역은 이욱연씨가 루쉰의 여러 산문집에서 편역하여 제호는 그의 산문집 <朝花夕拾>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영희선생님의 발문에 의하면 '오늘을 사는 많은 한국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주기 바라며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권한다'라고 했다.
역자(이욱연)에 의하면 노신의 글들은 천천히. 저작(咀嚼)하듯 입에서 한참을 굴리며 침을 충분히 바르고, 알맞게 씹은 뒤에 삼켜야 만이 루쉰 글의 참맛을 음미할수 있을 것이라 했다.
바로 루쉰의 진면목은 평론에 있으며 중국 민중의 병폐를 가차없이 비평하였다. 그의 뻐를 후비는 것같은 신랄한 비펴 속에 청년에 대한 애정을 느낄수 있다.
미움 속의 사랑, 과거 이야기 속의 오늘의 현실, 웃으면서 우는 그의 마음과 글의 특징은 역설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 발간된지 20년이 지났음에도 바로 오늘의 한국, 현재의 사회와 인간의 모습을 들여다 보는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시대를 초월하고 있다.
마치 나자신에게 말하고 있다는 생각에 깜짝 놀라고 부끄러움마져 들게 한다. 이것이 바로 루쉰의 글의 힘이 아닐까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 속에서 나의 의식에 새로운 눈을 뜨게해준 함석헌옹이 떠나지 않았다.
루쉰은 청년시절 일본으로 의학을 공부하던중 우연히 본 슬라이드때문에 바로 중국으로 돌아온다.
무엇보다 급한것은 중국민중의 개혁이었기 때문이다.
루쉰은 절망과 어둠, 고통과 좌절을 끌어 안으며 살다갔다. 그는 바로 희망을 찾아 헤매었다.
<밑줄>
밤은 조물주가 만든 신비의 이불이다. 그래도 밤만은 진실하다. 나는 밤을 사랑하며, 그리하여 밤중에 밤의 송(頌)을 쓴다.(38)
희망이란 무엇이더냐? 탕녀로다
그녀는 아무에게나 웃음을 팔고 모든 것을 바친다.
절망은 허망하다. 희망이 그러하듯.(페퇴피 샹돌, <희망>) /40
사람이 적막을 느낄때 창작은 탄생한다. 마음 속이 깨끗할 때 창작은 탄생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창작의 뿌리는 사랑이다.(98)
추억이란, 사람을 즐겁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쓸쓸하게 만들기도 한다. 지나가 버린 쓸쓸한 시간을 마음 속의 실 한올로 매어 둔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히려 그것들을 완전히 잊어버리지 못한데서 고통을 느낀다. 완전히 잊혀질수 없는 추억의 파편들.(223)
안락한 환경에서 살던 사람이 갑자기 그 반대의 생활로 추락해 버릴때, 그 추락의 과정에서 세상사람들의 참 모습을 볼수 있을 것이다.(224)
나는 내 나름의 확신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희망이라는 것을 말살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왜냐하면 희망이란 미래에 속하는 것이기에, 반드시 없다고 하는 내 주장으로, 있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을 꺾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