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바로 ‘그러나’가 있다. 이야기되지 않은,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 정유정작가의 책을 처음 만난 나로서는 호기심과 기대를 가져다 주었다. 2009년 세계문학상을 받은 <내 심장을 쏴라>가 한때 돌풍을 몰고 온 적인 있었음에도 볼 기회를 놓쳤다. 책과 독자가 만나는 시간의 일치란 이렇게 불현듯 예기치 못하게 일어난다. 책을 처음 펼쳤을때 공포적인 내용을 담은 스릴러물일 것이라 생각하며 읽어 갔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의 삶에서 비켜가고 싶어도 피할수 없는 질풍에 걸려 파멸할 수 밖에 없는 한 인간의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벼랑끝에서 자신의 생을 바쳐 지켜낸 ‘그 무엇’에 관한 이야기다. 한때 야구선수였던 남자가 어깨부상으로 더이상 야구를 할 수 없어 경비업체에 몸을 담고 일을 하게 된다. 새로이 발령받은 세령마을로 사택을 한번 둘러보기 위해 술을 마신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예기치 못하게 수목원 원장의 딸을 치어 목숨을 잃게 한다. 그 아이의 시신을 세령호에 빠뜨린후, 그날 이후 그의 삶은 불안과 벼랑끝으로 내몰리게 된다. 피해자의 아버지인 오영제의 집요한 파헤침과 그들의 가족을 향한 복수. 최현수의 아버지에 대한 불행했던 기억이 꿈속에서 그를 지배한다. 그는 자신의 아들은 자신처럼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를 쓰지만 꿈속의 또 다른 자신은 그를 놓아주지 않고 그를 나락으로 몰고 간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아저씨인 ‘안승환’은 친척도 모두 외면했지만 최현수의 아들 서원을 아버지 대신 지켜주려 애쓴다. 서원은 아버지의 일로 학교와 사회에서 따돌림과 외면을 당한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이다. 누군가의 잘못으로 대대로 죄값을 묻는 것은 비인간적이다. 누구나 자의든 타의든 실수를 할 수가 있다. 다만 현재 자신이 그렇지 않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잘못을 정죄할 수 있는 권한은 없는 것이다. 한편 오영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자신의 따을 치어 숨지게 한 남자를 용서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방법은 동의할 수 없지만 책에서는 마치 최현수가 피해자인 것처럼 초점을 맞추어져 있다. 작가의 탄탄한 서사적인 면은 인정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삶을 걸고 지켜야 할 그 무언가가 있는지 나 자신에게 물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