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 반양장
피천득 지음 / 샘터사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리워하면서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인연),137

 

작년에 관련업체 장님께 인사하러 들렀다가 우연히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보면서 "책이 참 많으시네요"하며 내심 반가워했다.

그분은 매달 정기적으로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시고, 시간날때마다 책을 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이전과 다르게 보였다. 또 다른 업체나 관공서에 갈때는 늘 책을 담당 비서들에게 선물로 주신다는 얘기에 멋지신 분이란 인상을 받았다.

그날 내게도 이 책을 선물로 주셨는데 마침 나도 그 책을 몇달전 구입해 놓은 책이어서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내가 가지고 있던 그 책을 선물로 주었다. 책은 이렇게 좋은 인연을 만들어 주고, 하나의 사슬처럼 이어가게 되는 것인가 보다.

고등학교때 국어교과서에 실린 '수필'이란 글을 처음 대했을때 문장 하나하나가 시어처럼 내 가슴을 놀랄만큼 두근거리게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각난다. 그것은 내게 충격이었다.

아마 최초로 내게 '수필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관념을 갖게 만든 책이 아닌가 싶다.

더우기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찰스램'에 대한 글을 여기서 보게 되니 좋아하는 작가를 공유하는 기쁨이 이토록 반가울 수가 없다.

이렇게 책을 통해서 작가와 독자의 인연이 만들어 지는게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금아 피천득의 딸에 대한 애정어린 글들을 보면서 한없는 아버지의 사랑을 보았다.

그토록 나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문장들을 다시 읽어보는동안 나도 모르게 어느새 푸른 가슴으로 물들어 있음을 책을 덮으며 깨달았다.

-------------------------------------------------------------------------------------------

"11월 어느 토요일 오후는 황혼이 되어 가고 있었다."라는 소설배경을 좋아하던 나는 "그들은 이른아침, 바이올렛빛, 또는 분홍빛 새벽 속에서 만났다. 여기에서는 일찍이 그렇게 일찍이 일어나야만 되었기 때문이다."라는 시간적 배경을 좋아하게 되었다.(新春), 21~22

 

貧寒이란 말은 냉랭한 겨울 날씨같이 오히려 좋은 데가 있다. (早春), 24

 

예전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생애가 찬란하였다 하더라도 감추어 둔 보물의 細目과 장소를 잊어버린 사람과 같다.(장수), 86

 

눈같이 포근하고 안개같이 아늑한 잠, 잠은 괴로운 인생에게 보내온 아름다운 섬눌이다. 죽음이 긴잠이라면 그것은 영원한 축복인 것이다.(잠), 212

 

문학은 금싸라기를 고르듯이 선택된 생활 경험의 표현이다. 고도로 압축되어 있어 그 내용의 농도가 진하다.

문학은 작가의 인격을 반향한다. 그러므로 고전을 통하여 숭고한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 외우치옹의 말같이 상실했던 자기의 본성을 되찾기도 한다. 고전을 읽는 그 동안만이라도 저속한 현실에서 해탈되어 승화된 감정을 갖게 한다. 문학의 본질은 언제나 情이다. 그 속에는 "예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자연적인 슬픔, 상실, 고통"을 달래주는 연인의 정이 흐르고 있다.(순례), 229

 

유머는 가없는 인간의 행동을 눈물어린 눈으로 바라볼때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머에는 哀愁가 깃드는 때도 있다.(유머의 기능), 264

 

긴긴 시간을 혼자서 가질 수 있는 사치가 있다. 하늘에 별을 쳐다볼때 내세가 있었으면 해 보기도 한다. 그리고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晩年), 27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