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눈은 모든 것을 지우고, 혹은 썩어 사라질 모든 것을 보존시키고 잠시나마, 그래서 고스란히 흩어진 모두의 가슴 속에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

파헤친다 한들 낙엽의 전부를 되찾지 못하듯이, 그 누구도 기억의 전부를 되찾지는 못한다. 지나간 시절 속에, 저 눈속에 나 자신의 일부가 묻혀 있는 기분이었다.

(‘죽은왕녀를 위한 파반느’ 중에서)



작년 눈이 많이 내린 어느날 이책을 읽었다.

책의 시작도 눈이 많이 내린 어느 겨울날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었다.

어쩌면 책과 독자가 만나는 것도 이처럼 시간과 공간의 교차점처럼 일치되는 순간이 있는가보다.

나는 어떤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을때는 잘 안 읽게 되는 습성이 있다.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냥 조금 관망하고 있다가 어느 정도 잠잠해 질때쯤 그제서야 조용히 그 책을 집어서 읽는 편이다.

그러면 책에 대한 나만의 감정을 오롯이 느낄수 있을거 같은 생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책도 그중의 하나인데 책의 주인공에 대한 설정이 대부분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주인공이 아니라 주위의 시선을 끌 정도로 너무도 못생긴 한 여자의 이야기여서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생각도 있었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특히 주인공들은 언제나 아름답고, 능력이 뛰어나고, 무언가 남다르다는 것에 대해 주눅이 들 때가 한번쯤 있었을 것이다. ‘소설이니까’ 하면서

잘생기고 못생긴 것에 대한 기준은 무엇인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진대 우리 사회의 스펙은 너무도 천편일률적이다. 얼짱, 몸짱이 미인의 스펙처럼 표준화되고 있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그늘은 언제나 시녀처럼 들러리가 되어야만 하는 풍토이다.

TV 오락프로에서 코미디언들은 언제나 못생겼다는 것(사실 그렇지 않은데도 불구하고)에 관점을 두고 미녀스타와 비교하면서 웃음을 자아내는 것을 볼때마다 나는 씁쓸한 기분이 들어 아예 눈을 돌려버리곤 한다. 나는 이것이 우리나라 개그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이책을 읽으면서 빅톨위고의 웃는남자 ‘괭플랜’ 이 떠올랐다. 그의 너무도 기괴한 얼굴 때문에 광대로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는 숨어있는 무서운 음모와 너무도 지극하고 숭고한 사랑이 담겨있어 강인하게 남아 있었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20대가 주어지지만 내게는 너무도 평범하고 평범하다 못해 도무지 이십대라고 말할수 없는 평범하지 못한 시절이었다. 이 책은 그런 시절을 보낸 내게 더할수 없는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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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삶이 아까울수록 인간의 기억은 아쉬워진다. 터무니없이 짧았던 우리의 사랑도 그런 것이었다.(35)



종착역에 이를 때까지 기차에서 내리지 못하는 인간처럼, 인생의 어느 지점까지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일부가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54)



정말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을 땐 단 한줄도 쓸수 없는게 인간이거든요(150)



결국 열등감이란 가지지 못했거나 존재감이 없는 인간들의 몫이야.

보잘것 없는 인간들에겐 그래서 <자구책>이 없어, 평생을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면서 말이야. 이세계의 비극은 그거야(221)



결국 인간의 추억은 열어볼 때마다 조금씩 다른 내용물이 담겨 있는 녹슨 상자와 같은 것이다(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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