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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기도하는 집 - 오늘의 작가 1
이윤기 지음 / 세계사 / 1999년 12월
평점 :
품절
얼마전 고 이윤기님께서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작품들을 찾아보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이윤기의 그리이스로마신화>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책을 번역한 사람정도만 아는 것에 불과 했다 하지만 그중 어느 한권도 읽어보지 못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의 작품들중 최초 장편소설인 <하늘의 문>은 이미 절판되어 몇몇 사람들에 의해 소장되고 있어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나무가 기도하는집>은 우선 제목에서부터 무언가 느낌이 특별할것 같아 읽게 되었다.
종교적인 이야기가 아닌 인간과 인간사이, 인간과 자연사이에는 빈틈이 없는 합일체를 이루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야기 중간 중간에는 짤막한 신화가 소개되어 이 책의 특별한 묘미를 더해주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이민우는 세상의 지식보다는 세상의 이치를 누구보다도 느낌으로 아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기에 우연히 그의 집에 찾아온 상처로 인해 마음을 닫은 자야 아가씨에 대해 어떤 질문도 대답도 요구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상처를 햇빛에 들춰내기보다 달빛 속으로 스며들게 함으로써 스스로 자아를 찾아가게 만드는 아름다운 신화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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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야 아저씨는 삶의 굽이굽이에 매복하고 있는 듯한, 믿어지지 않는일,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 그 삶을 아주 색다른 것으로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아는 사람이다.
특별하지 못한 남자와 특별하지 못한 여자의 특별한 만남도 그렇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남들에게는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 일이 자기에게는 한번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살던 사람이기도 하다.(28)
그는 나무와 함께 있을 때면 행복의 파장 비슷한 것을 경험하고는 했지만, 그것이 나무가 지니고 있는, 사람의 원초적인 습관과의 만남을 통한 행복이라는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76)
그는 기다리기만 했다. 기다리는 일만이 자기에세 허용된 선택인 듯이 그는 자야 아가씨에게 변화가 오기를, 상처 입은 영혼이 그 어머니인 자연에 익숙해지기를. 이 세상으로 오던 날의 자연스러움을 되찾게 될 날을 기다렸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모르면서도 기다렸다. 그는, 아무일도 하지 않고 있으면서도 무엇인가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음에 분명하다.(83)
더 물러날 데 없는, 뿌리뽑힌 경험이 있는 나무와 상처 입은 경험이 있는 영혼이 서로 의지가지로 삼고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84)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이 무엇인가? 창피하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무엇인가? 혹,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으로의 너무나 인간적인 복귀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징후는 아닐 것인가?(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