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5년전 이 책을 처음 보았을때 <섬>이란 제목에서 나는 낭만적인 서정적인 글일거란 기대를 갖고 읽었다. 그러나 얼마안가서 이 책은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좀 심오한 것 같아 조금 어렵게 읽었다는 기억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산에 오르기 위해 책장을 둘러보던중 이책이 얇기도 하고 배낭에 무게에 부담되지 않을것 같아 넣어 가지고 산정상에서 한 챕터씩을 읽어갔다.

그동안 책을 읽으면서도 재독을 한책이 한권도 없었는데 내가 몇번이고 반복해서 읽은 책은 단 한권 바로 이 책이다.

카뮈가 어느날 길에서 이 책을 읽다가 접어 가슴에 꼭 안은채 아무도 없는 곳에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자신의 방으로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 모습이 연상되었다 

나중에는 산을 오르기 위해 가는것보다 단지  <섬>을 읽기 위해 정신없이 산을 오르는 나의 마음도 카뮈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지난주 수락산에서 마지막장인 <보로메의 섬들>을 읽고 내려오면서 내게도 보로메섬을 발견할수 있었다.

나만의 보로메섬은 바로 그런 것이다.

안개와 비와 바람이 부는 넓은 들판에 서 있는 나무와 들꽃들, 육지의 섬인 산과 바다가, 초사흘날 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이  나의 보로메 섬이다.

그날 수락산에서 갑자기 소낙비를 맞아 그동안 늘 넣고 다니던 우비는 그날따라 빼놓고 온 참에 비를 맞아서  여름에 개도 안걸리는 감기로 고생을 했다.(하긴 나는 개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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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의 매혹>

가장 좋은 것도 없고 가장 못한 것도 없다. 이때에 좋은 거쇼이 있고 저때에 좋은 것이 있다......

그러나 <이제 막> 욕망이 만족되려고 하는 순간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인가 (32)
 

공포심과 매혹이 한데 섞인다-앞으로 다가서면서도 뒤로 물러나는 것이다. 그 그칠 사이 없는 움직임의 대가를 받는 날이 찾아오는 것이니, 말없이 어떤 풍경을 고즈넉히 바라보고만 있어도 욕망은 입을 다물어버리게 된다.(33)

<고양이 물루>

 나는 하루에 세번 무섭다. 해가 저물때, 내가 잠들려 할때, 그리고 잠에서 깰때.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것이 나를 저버리는 세번..... 허공을 향하여 문이 열리는 저 순간들이 나는 무섭다(42) 

참으로 그날은 암담했다. 희망이라곤 비문 속에 새겨진 그 단어 뿐이었지만 희망이란 말마저 내 주위의 모든 정경 못지 않게 끔찍한 모습이러서 금장이라도 절망에 빠져버릴것 같았다(48)

옛날에는 내게 그렇게도 적의에 찬 모습으로만 보였던 死者들의 땅과의 그 침밀감은 그보다 더 흐뭇하게 느껴졌다. 내가 어떤 사람을 그곳에 맡긴 이후 나느 마치 낯선 고장으로 들어가듯 묘지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게 되었다(50)  -(나도 그 이후 산에서 묘지를 발견하게 되면 어떤 친밀감같은 것을 느꼈다.)

고양이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자유를 좋아할 뿐이다. 그는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지만 항상 정해진 집으로 되돌아 온다. 흔히들 고양이는 사람보다 집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68) / 이 사실도 처음 알았다 고양이가 집을 좋아한다는 것을 )

<케르겔렌군도>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77)/ ( 첫문장에 얼마나 가슴이 떨렸는지 또 읽고 또 읽고 몇번이고 읽었다. 나도 나만의 비밀을 간직하고 싶었다.) 

방탕에 빠진 친구의 관심이 끌리는 쪽은 댄스홀이나 쾌락의 거리가 아니라 어둠이 내릴 무렵 여니들이 옷깃을 스치고 지나가며 나직한 목소리로 유혹의 말을 건네오는 한녘진 골목길들이다(82)

오직 가난만이 마음 약한 사람들을 서로 가까워지게 하고 튼튼하게 해줄 수 있다.(82)

나는 하나하나의 사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비빌을 예찬했다. 비밀이 없이는 행복도 없다는 것을(84)

달은 우리에게 늘 똑같은 한 쪽만 보여준다. 사람들의 삶또한 그러하다(90)

케르겔렌 군도는 선박이 다니는 일체의 항로 밖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 고장의 내부는 완전히 황폐하고 살아잇는 것이라고는 전혀 찾아볼수 없다(92)

<행운의 섬들>

자신에게 배정된 방안으로 들어갔을때 열린 덧문 사이로나무들, 하늘, 포도밭, 성당들이 소용돌이치는 저 거대한 공간이 보이자 그는 마치 어떤 열쇠구멍으로 들여다보는 느끼밍 들어서 그만 눈물이 쏟아져나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고 했다, 찬미의 눈물이 아니라 <무력감>의 눈물이었다(98)

위대한 풍경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힘으로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찬 것이다. 그리스 사원들이 매우 자그마한 것은 희망을 허락하지 않는 빛과 가없는 풍경으로 인하여 정신이 혼미해진 인간들을 위한 대피소로서 지어졌기 때문이다.(100)
 

가장 달콤한 쾌락과 가장 생생한 기쁨을 맛보았던 시기라고 해서 가장 추억에 남거나 가장 감동적인 것은 아니다. 그 짧은 황홀과 정열의 순간들은 그것이 아무리 강렬한 것이라 할지라도 인생행로의 여기저기에 드문드문 찍힌 점들에 지나지 않는다(101)

<부활의 섬>

그때 기분이야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데가 있어요. 내가 자유롭다는 기분,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기계가 아니라는 기분, 그런 거지요(114)

일생동안 필경 풍경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을 백정이 무엇이건 눈에 띄는 것만 있으면 그 앞에서 오랫동안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그는 인간들이 그에게 거절한 의지(依支)를 사물들에게 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투박한 사내의 눈길 아래서 대지가 고동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117)

 해맑게 씻긴 하늘은 아무리 바라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그 푸른 하늘은 짙으면서도 마치 투명한 꽃잎 같아서 유년시정에서 처음으로 잠 깨어날때 느껴지는 감정처럼 마음을 흔들었다.(119)

박물관과 도서관들이 내 관심을 끌었다. 저 형언할길 없는 과거의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나는 나를 에워싸고 있는 맹목적이고 엄청난 힘들로부터 헤어나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인식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무(無)에 대한 섬뜩함이었다.
저 성벽처럼 쌓인 책들 속에는 얼마나 대단한 매혹이 깃들여 있었던가!(120) 

섬들을 생각할 때면 왜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되는 것일까? 난바다의 시원한 공기며 사방의 수평선으로 자유스럽게 터진 바다를 섬 말고 어디서 만날수 있으며 육체적 황홀을 경험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섬말고 또 어지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섬에 가면 격리된다-섬의 어원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섬 , 혹은 <혼자뿐인> 한 인가. 섬들, 혹은 <혼자씩일 뿐인> 인간들.(123-124)/ 쿡선장의 (여러가지 여행들)

<상상의 인도>

아름다움이란 너무나도 빈곤한 귀중품이어서 그것만 가지고 살수는 없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어디서나 성스러움의 벌겋게 달군 부젓가락으로 낙인을 찍어 그것을 파괴한다....예술의 절정은 예술을  無로 만드는 일이다(140) 

우리들 인간의 감정과는 거리가 먼 감정을 가진 동물들의 생활은 교훈적이다, 개나 새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줄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그들은 우리들이 커다란 도약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준다.(160-161) 

<사라져버린 날들>

아무것도 하는 일 없는 공백의 페이지다, 완전히 공백 상태인 오늘만이 아니다. 최고의 사치란 무상으로 주어진 한 삶을 얻어서 그것을 준 이 못지않게 흐드러지게 사용하는 일이며 무한한 값을 지닌 것을 국부적인 이해 관계의 대상으로 만들어 놓지 않는 일이다.(167)

나는 멀리 와 있었는데도 갇혀있었다. 어디서부터 멀리? 어디에 갇혀서? 내 주위에다가 여러 개의 뿌리들이 내리게 한 뒤에야 나는 내가 욕망했던 것을 사랑하기 시작했고 또 그 다음에는 내가 사랑하고 있는것과 나 자신을 분간하지 않게 되었다(169-170) 

<보로메의 섬들>

하늘은 어둡고 포도는 더러우며 집들은 잿빛인 이도시에서 이 간판<보로메 섬으로>이 얼마나 안 어울리는 것일까.  그 대조에 나는 가슴이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174)

여행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산을 넘으면 또 산이요 들을 지나면 또 들이요 사막을 건너면 또 사막이다. 결국 절대로 끝이 없을 터이고 나는 끝내 나의 둘시네를 찾지 못하고 말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말했듯이 이 짤막한 공간 속에 긴 희망을 가두어두자.(175)

태양과 바다와 꽃즐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나에게는 보로메 섬들이 될 것 같다. 마름 돌담하나만으로도 나를 격리시켜주기에 족할 것이고 어느 농가의 문턱에 선 두그루의 시프레 나무만으로도 나를 반겨주기에 족할 것이니 -이토록 잔혹하게 가까운-나의 보로메 섬들일 것이다.(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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