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뿌리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맹가리의 작품들을 읽어보면 인간의 본질적인 존엄성에 대한 어떤 기조가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인간에 대한 증오나 절망보다는 절망에 맞서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최초의 생태 소설이어서인지 개인적으로 더욱 관심을 갖고 읽기 시작했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다 읽을 수 있었다. 내 이해력의 부족이었는지 몰라도 번역상 글의 흐름이 잘 이어지지 않아 조금 애를 먹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표현한 아프리카의 대자연에 대한 아름다움이나 인간의 내면에 대한 표현은 나를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그의 우정어린 모습이 바로 내가 로맹가리를 좋아할수 밖에 없는 또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헝클어진 머리칼 아래로 반듯하고 고집스런 이마에 세 가닥의 깊은 주름이 팬 초췌한 얼굴의 모렐을 떠올릴때면 나는 로맹가리의 얼굴이 겹쳐진다

---------------------------------------------------------------------------------------

간단한 사실이에요 개로는 이제 부족한 겁니다. 사람들은 너무도 외롭다고 느껴서 동반자가 필요한데, 훨씬 더 덩치가 크고 강한 무언가가 필요한 겁니다, 기대어도 버틸수 있는 무언가가 말이죠, 더는 개로 충분치 않고 사람들에게는 코끼리가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코끼리를 건드리는 걸 원치 않아요(15)

한 인간이 온기와 우정을 필요로 한다는 게 결코 놀랄 일은 아니었으니까요. 아프리카 땅의 온기와 몇몇 길들인 짐승의 우정에 만족할 정도라면 이 가련한 여자는 정말이지 가진 거라곤 없는 모양이었다.(26)

거기에는 아프리카 풍경이 언제나 그렇듯 광막한 공간이, 무한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그 어떤 놀라운 존재가 떠나버린듯 신비스러울 정도로 황량한 공간이었다. 이 풍경을 대하면 오늘날 사라지고 없는 선사시대 동물의 이미지가 절로 떠올랐다. 이 버려진 빈 공간은 마치 사라진 동물이 돌아오기를 요구하고 있는것 같았다.(56)

"아직 한마리가 남아있지. 아주 깊숙이 숨겨 놓았지 그런데 더이상 녀석을 돌볼수가 없어... 녀석에게 필요한게 내게 없어.... 네것들과 함께 맡아줘... 이름은 로돌프야"

"바보같은 이름이잖아.  난 싫어..... 네가 직접 돌봐  알았어 네가 나으면 돌려줄거야" 하지만 로돌프가 영원히 나와 함께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죠. 그후 나는 어디를 가건 그놈을 데리고 다닙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아프리카에 온 이유이고, 내가 보호하려는 것입니다(62)

개들은 완전히 일에 지쳤습니다. 더는 견디지 못할 상태입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우리 곁에서 꼬리를 흔들고 발을 내미느라 이젠 지긋지긋해진 겁니다. 개들은 너무도 많은걸 보아왔으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도 외롭고 버림받았다고 느끼고 있어 튼튼한 다른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지요. 참으로 견뎌낼수 있도록 해줄 그 무엇을 말입니다. 개로는 충분치 않아 코끼리가 필요한 겁니다(162)

아프리카는 밤이면 제 신비를,  수없이  많으면서 뒤섞이지 않는 소리들, 외침, 호소 그리고 웃음소리들을 되찾았다.

공기는 사막의 선선한 바람에 자극받아 청명한 고동소리를 내고 있었고, 그것은 마치 하늘 자체가 내는 목소리와 숨소리 같았다. 불현듯 곤충들의 이 소란한 소음, 작은 생물들의 합창에 화가 나기라도 한 듯이 아무리 먼 거리라도 가깝게 들리는 맹수의 포효소리가 일었고, 그러자 모든게 적막해졌다.
달 주변의 구름까지도 갑자기 먼 곳으로 황급히 달아나기 시작하는것 같았다(229)-아프리카의 신비한 풍경을 눈으로 보는 듯한 세밀한 표현

기진맥진했을땐 나처럼 해봐. 아프리카를 가로질러 달리는 자유로운 코끼리 떼를, 벽도, 철조망도, 아무것도 거칠게 없는 수백마리의 경이로운 짐승을, 툭터진 공간을 가로질러 달려들어 지나가는 길에 모든 것을 뭉개 버리고, 모든 걸 뒤엎어 버리는 수백마리의 코끼리를 생각해 봐.

살아 있는한 무엇으로도 그들을 멈추게 할수는 없지. 바로 자유란 말이야!. 살아있지 않다 하더라도 저 세상에서도 여전히 자유로이 계속 달리고 있을지 누가 아나.  자유로운 코끼리떼를 상상하고 눈으로 쫒아봐. 달리는 녀석들에게 매달려봐. 그러면 모든게 곧 나아진다는 걸 알게 될거야.

눈 앞에서 전능하고 살아있는 자유의 이미지를 보며 살아가는 데서 우리는 야릇하고 비밀스런 흥분을 느꼈다오.

자연의 심장부에서 터져 나오는, 무엇으로도 멈추게 할수 없는 이 힘이 다가오면서 땅이 진동하는 듯한 느낌마져 받게 되었지요(260)

유머란 삶이 지긋지긋해졌을 때마다 아주 신중하게, 누를 끼치지 않고서도 당신의 현재 조건을 날려버리게 하는 그런 조용하고도 예의바른 다이너마트 같은 것이다(298) 

아프리카와 그 주민들을 너무도 좋아했기에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지 못한 걸 결코 아쉬워 하지 않았다. 위에서 내려다 보면 아마도 아름답겠지만 먼 전망이 될 것이다. 그는 거대한 파노라마보다는 친근한 풍경들을 더 좋아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바닥을, 땅을, 흑인 농부들을 택했고, 거기에 단단히 매달려 살아왔다. 결코 꼭대기를 꿈꾸어 본 적이 없었다(582)
  

그는 언덕 쪽으로, 나무 그림자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나무 쪽을 향할 때마다 그는 수많은 나뭇가지들을 쓰다듬는 듯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나무는 그가 오래전부터, 십자가보다 먼저 좋아하던 기호였다. 그는 미소 짓고 있었다(6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