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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단장해드립니다, 챠밍 미용실
사마란 지음 / 고블 / 2024년 6월
평점 :
영혼을 단장해드립니다.
이 책은 죽은 자와 산 자, 신비로운 설화적 존재와 평범한 이웃들이 동시에 공존하는 작은 동네를 무대로 삼는다. 그리고 죽은 자들의 소원을 이뤄주며 초월적인 존재들과 소통할 수 있는 미용실 주인 ‘챠밍’과 한반도에 수백 년간 살아왔으며 현재는 복덕방을 운영하는 도깨비, 이제 막 초월적인 존재들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의명’, 세 명의 주인공이 현월동 이웃들과 함께 겪어나가는 따뜻한 소동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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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차밍 미용실입니다.
미용사는 나를 향해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었다. 어쩐지 부자연스럽고 기묘한 미소였다. 미용사는 내 행색을 보고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손님, 무슨 일이래요? 이 땀 봐! 이리 앉으실까요? 시원한 차 한 잔 드릴게요. 어쩐지 오늘 귀한 손님이 오실 것 같아서 미리 차게 식혀두었답니다.
삼 남매는 부모가 좋은 곳에 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이 일을 가슴에 담아두기로 했다. 그들은 평생을 착하고 바르게 살 것이다. 챠밍의 말처럼 부모가 차곡차곡 쌓은 덕은 아이들에게로 이어져 모두 큰 탈 없이 일생을 누리게 될 터였다. 염경수와 최하나는 미용실에 와 곱게 단장을 한 후 챠밍에게 깊숙이 절을 하고 저승으로 떠났다. 손을 꼭 잡고 걷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는 차밍도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집 안은 어두웠다. 텅 빈 어둠 속에는 할아버지도 어린 아이도 없었다. 눈앞에는 악취를 풍기는 할머니의 시신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현이 왔네. 얼마 전에도 다녀갔는데 또?"
"엄마 아빠가 맨날 맨날 기도를 하셔서요. 꿈에서라도 만나게 해달라고. 근데 개도 키우세요?
아이는 해맑게 웃었다. 챠밍은 말없이 현이를 의자에 앉히고 일을 시작했다. 손질을 하면 할수록 아이의 모습은 통통하고 피부가 말간 열 살 아이의 모습을 찾아갔다.
"마셔 봐, 할머니."
할머니는 손에 든 차를 한 모금 들이쳤다. 따듯하고 들쩍지근한 차가 몸을 데워주는 기분이었다. 이 차는 뭔지 미용실이 어디에 전화를 했는지 정말 옛날에 혜어진 남편을 찾을 수 있는 건지 궁금한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는데 말을 할 틈이 없이 자꾸만 잠이 쏟아졌다
죽었는데. 이상하게 잠이 계속 오네.
눈을 껌백거리며 잠을 쫓아 내봤지만 참을 수 없는 졸음이었다. 연신 하품하던 할머니는 곧 잠이 들었다. 잠든 할머니의 눈앞에 부모와 떨어지는 게 무서웠던 열여섯 어린날의 여름날이 펼쳐졌다.
노력하지 않아도 해는 뜨고 새날이 밝았다. 같은 일=상도 반복되었다. 가많이 있어도 해는 지고 망자들의 시간도 시작되었다. 산 사람이건 망자건 까다로운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라 망자 하나가 더 젊어 보이게 해 줄 수 있지 않냐며 챠밍을 붙들고 통사정을 했다.
'지금이야!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린 의명이 주머니에 꽃아 두었던 명부를 노인의 가슴팍에 붙였다. 영문을 모르는 노인이 놀라 뒷걸음질 치는 사이 노인의 형체가 조금씩 흐려지며 종이가 불에 타들어가 듯 사라졌다. 의명이 그린 그림은 그 불꽃이 타들어가는 모양으로 노인의 모습이 스며들었다. 이윽고 노인이 서 있던 자리엔 먼지만이 휘날렸다. 검은 선만 있던 그림은 색이 채위졌다. 이제 노인은 의명의 그림 속에 봉인되었다.
"희한하단 말이지. 꼭 이름을 알려주면 그림에 봉인된다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이름을 알려주려 하지 않는단 말이야"
차라리 너랑 하면 좋겠지만 도깨비랑은 혼인할 수가 없는걸."
"왜 안 되는데?"
"도깨비니까."
챠밍의 대답에 도깨비는 부아가 치밀었다. 그 혼례가 대체 뭐길래 도깨비와는 안 된다는 건지 어린 도깨비는 알지 못했다. 화가 난 도깨비는 챠밍을 혼자 둔 채 혼적도 없이 사라졌다. 챠밍은 쪼그리고 앉은 무릎을 끌어당겨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순영 아주머니도 도깨비도 화나게 만든 것이 너무 슬펐다. 챠밍은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셋은 왁자지껄 떠들며 캔맥주를 한 모금씩 마셨다. 밤이 깊어 갈수록 바람은 건조해지고 둥실 떠오른 달빛이 세사람의 얼굴을 비추었다. 오백여 년만에 가져본 즐거운 시간이었다. 의명은 즐거운 듯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달을 구경했다. 도깨비가 흘끗 챠밍의 얼굴을 보았다. 챠밍도 열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둘을 바라보는 도깨비는 지금의 이 평화가 오래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