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발견 - 사랑을 떠나보내고 다시 사랑하는 법
캐스린 슐츠 지음, 한유주 옮김 / 반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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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경험이 어떻게 우리 삶을 뒤바꾸는가에 관한 아름답고 깊이 있는 에세이

 

퓰리처상 수상 작가 캐스린 슐츠의 상실과 발견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회고록 그 이상”, “숨겨진 보석으로 가득한 책이라는 찬사와 함께 큰 사랑을 받은 책이다. 전미도서상과 앤드루카네기상 파이널리스트에 올랐으며 람다문학상을 수상했고, 피플, 타임, NPR 등 수많은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혔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또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안내서이자, 아주 평범한 경험 속의 빛나는 경이를 발견하는 섬세하고 따뜻한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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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저마다 하나씩 지닌 이런 목록은 상실이라는 범주가 얼마나 특이한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상실이란 얼마나 거대하고 곤란한가. 상실 속에 속하는 항목들은 서로 공통점이 희박했다.

처음으로 상실에 관한 생각에 잠긴 나는 어떤 유형의 상실은 사실상 긍정적이라는 점을 깨닫고 놀라게 되었다. 우리는 자의식이나 두려움을 상실할 수 있고, 사막이나 산에게 길을 잃는다 는 건 두려운 일이지만, 사색하거나 책을 읽는 중에, 혹은 대화를 하다가 길을 잃는 다는 건 근사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까이 있기를 원했다. 그들의 존재가 상당한 고통을 불러냈지만 말이다. 부모를 잃는 사건 전에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 결과를 너무나 잘 알게 되었는데, 그저 남은 가족들에게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낯익은 아버지 지갑을 보면서 아버지의 부재를 마주친다. 그중 몇몇은 내 아버지였던 사람에 대해, 잠시 멈추어 아버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들게 한다. 몇몇에 대해서는 우울하고 애매한 감정이 든다. 의자처럼 일상과 관련된 기념물은 언제나 아버지와 함께 환히 빛나고 있기에 내가 밝힐 필요가 없는 양초다.

 

우리가 발견하는 모든 대상이 그러하듯, 새로운 사고에도 이처럼 서서히 도달할 수도, 갑자기 도달할 수도 있다. 상당수의 깨달음이 셀 수 없는 시간을 사색하며 보낸 끝에 나타나지만, 때로 기나긴 사고 과정보다 선행할 때도 있다.

 

단테처럼 자신의 감정을 상대가 모른다면 먼 거리에서 온갖 세세한 정보들을 어렵사리 구해야 한다. 운이 좋다면 사랑하는 이의 몸과 마음, 정신, 습관, 집을 포함한 전부에 대해 포괄적이고 사적인 탐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철저함과 탐욕 면에서, 상대를 알고 싶은 갈급함은 전형적으로 지식에 대한 갈망이다. 일반적으로 사랑에 대한 갈망은, 그것이 육체적이건 감정적이건 지적이건 실존적이건, 언제나 더 많이요구한다.

 

인간 종에 대해 유감스러운 사실은, 우리의 사랑하는 능력에 견줄 만한 건 오로지 이에 위해를 가하고 훼방을 놓는 능력뿐이라는 거다. 그리고 우리가 운명, 가족, 그리고 사회와 관련해 얼마나 운이 좋은지를 가늠하는 척도 하나는 얼마나 자유롭게 다른 사람과 행복ㅇ르 찾아갈 수 있었는 지를 보는 것이다.

 

누군가를 발견한다는 건 한없이 경이롭다. 우리 감각의 척도는 상실로 인해 우리가 엄청나게 작은 데 비해 이 세상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걸 새삼 깨달으며 바뀔지도 모른다. 발견 역시 같은 역할을 한다. 유일한 차이는 우리가 발견에서 절망이 아닌 경이를 느낀다는 점이다.

 

어떤 것을 상실하거나 발견할 때와 마찬가지로, 무한히 결합할 수 있다는 특성은 이 세계가 한없이 거대한 데 비해 그 안에 깃든 우리 공간은 간데없이 작게 보이는 결과를 낳는다. 한편, 이는 원시적인 지식의 상상된 형태를 모방한다. 그 형태란 존재한느 모든 것들이 우리 앞에 무계획적으로 던져져 있으며 어떤 관계가 그것들을 통제하는지는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햇살 환한 계곡을 통해 끝없이 흐르는 즐거움의 맑고 밝은 흐름이다. 우리는 슬픔의 개념도 갖고 있다. 슬픔은 거대한 나무가 쓰러질 때처럼 영혼의 무릎을 꿇게 하는 끔찍한 균열과 추락이다. 이런 개념들은 각각의 경험들 일부를 묘사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것이나 애도한느 것의 진정한 의미를 포착하지 못한다.

 

우리는 애도하는 동시에 사랑한다.

 

삶은 계속 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멈춘다. 믿음을 지닌 사람들의 말이 옳다면 어떤 사람들은 무덤 너머까지 삶을 이어가겠지만, 어찌되었건 우리가 아는 것으로서의 존재는, 사랑하고, 애도하고, 식료품점에 가고, 바다에 풍덩 뛰어들고, 밤에 차창을 내린 채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운전하고, 왜가리와 흑곰과 벼룩들 사이 여기에서 하루하루 그 모든 세부적인 좋음과 고난들을 겪으며 살아가는 존재는 죽음 앞에서 이 모든 것들을 멈추게 한다. 필멸한다는 의미는 본질적으로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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