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를 마중하러 왔어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17
박사랑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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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잊은 채 갑작스레 조선 시대에 떨어진 소녀,

수수께끼 같은 사건이 벌어지는 한양의 거리를 수사하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17, 안녕, 나를 마중하러 왔어가 출간되었다. 안녕, 나를 마중하러 왔어스크류바』 『우주를 담아줘등의 다채로운 소설을 내며 삶과 이야기에 대해 고민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날카로운 시선을 가진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평을 받아온 박사랑 작가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청소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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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눈을 떠 보니, 앞에 터널 같은 곳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걷는 중이라기보다는 허우적대는 중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무슨 소리라도 내려도 팩 내뱉었을 때, 나오는 건 울음뿐이었다.

 

아무튼, 나는 이상한 타이밍에 어디선가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곳이 조선 시대의 원주라는 건 아주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소년의 말투는 퉁명스러웠고 표정도 밝지 않았지만, 나는 어쩐지 소년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왠지 이 소년이라면 내 무리한 부탁을 들어 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너만 알고 있어야 돼. , 사실 현청루 사건 조사하고 있어. 이댁 도련님이 아프다기에 증세 확인하러 왔지.”

소년의 눈이 반짝 빛났다.

 

도성 안에 역병이 도는 건 두 분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제가 주목한 건 왜 그 병이 하필 현청루에서 시작됐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저 원칙 주의자가 이곳에 올 때는 무언가 유연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그럴 때 나리께서는 어떠한 답을 주십니까.”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그게 답이 됩니까?”

틀리지 않았다 지지해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옳다고는 하지 않아도 틀리지 않았다, 잘 가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마음으로 보내는 응원. 혹여 잘못된 길에 들었지라도 조금 더 가보라는, 가도 된다는 의미의 끄덕임. 그것이 이 사라에게 등을 곧게 세울 힘을 준다는 사실을 허천군과 희요를 보고 배웠다. 둘은 인생 경험이 짧은 내가 봐도 꽤 괜찮은 어른이었다.

 

희요와 나는 나란히 앉아 잠시 말없이 있었다. 연못이 비친 달을 보자 문득 미래에 있을 내가 떠올랐다. 나는 아직 그곳에 존재할까. 아니면 사라져 버렸을까. 여기에 있는 나는 누군인가. 달빛이 없는 생각이 이어지는 동안 구름에 달빛이 가렸다.

 

빨래를 다 널고 희요와 둘이 평상에 앉았다. 빨래처럼 내 마음도 가볍게 마르기를 바라면서 가만히 하늘만 쳐다봤다.

탐정 일은 잘되어 가고 있느냐.”

놀리지 마십시오.”

나의 뾰루퉁한 반응에 희요가 소리 내어 웃었다.

나는 네 나이 때 다른 이의 일에 그리 나서지 못했다. 오로지 나만 위했지. 네가 나보다 낫구나.”

놀림에는 대꾸할 말이 있었는데, 오히려 칭찬에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부끄럽고 민망했으나 뿌듯함도 일었다.

 

나를 그곳에 가두고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

아무도 나리를 가둘 수 없습니다. 그곳에 들어가는 것이 결국 세상 밖으로 나오는 길임을 나리께서는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둘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숨조차 제대로 내쉴 수 없었다. 희요는 대체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이며 허천군은 어떤 결심을 품고 있는 것일까. 이것을 내가 들어도 될까.

 

나는 지금 인생 3회차야. 따져 보면 엄마 아빠보다 더 오래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이런 어이 없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내가 모월임을 깨닫는다. 동시에 나는 나린이기도 하다. 서경일 수도 있고, 다른 무엇이 될 수 있다. 내임은 하나지만, 하나가 아니다.

 

나는 이제 어리둥절한 채로 꿈속에만 살지 않는다. 오히려 꿈의 언저리에 마중을 나가 새로운 나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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