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보물들 - 이해인 단상집
이해인 지음 / 김영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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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향기를 맡으면 꽃사람이 되지작은 희망을 노래하는 이해인 수녀

수녀원 입회 60주년 기념 단상집

 

우리 시대의 시인 이해인 수녀가 1964년 수녀원의 문을 열고 들어가 2024년에 이르기까지 60년간 품어온 이야기를 담은 책

어머니의 편지부터 사형수의 엽서까지, 첫 서원 일기부터 친구 수녀의 마지막을 배웅하며 쓴 시까지, 수녀원의 고즈넉한 정원부터 동그란 마음이 되도록 두 손을 모았던 성당까지, 열정 품은 동백꽃에서 늘 푸른 소나무까지 그에 얽힌 사연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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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를 냉대하지 말라, 천사일지 모르니.”

손님이 오지 않는 집은 천사도 오지 않는다.”

글방 곳곳에는 환대와 관련된 격언을 담은 액자가 걸려 있다. 나는 그 격언을 보며 손님들을 차별하거나 무례하게 대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환대의 미덕을 가꾸는데는 조금의 용기와 너그러움, 지혜로 충분하다.

 

꽃들을 버리기 아까워 자주자주 말린다. 마른 꽃으로 카드를 만든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지만 장미나 안개 꽃, 모란 꽃잎으로 디자인한 편지지에 편지 쓰는 일이 즐겁다.

스티커나 조그만 조가비를 이용해 카드를 만들때는 디자이너의 재능이 부럽다.

편지지, 메모지, 포장지를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는 꿈을 꾼 시절도 있었지.

수녀원 둘레에 떨어진 태산목의 마른 열매를 줍는다. 태산목은 잎이 크고 꽃도 하얀 목련을 닮아 우아하다. 화려한 흰 꽃을 떨군 태산목의 열매를 보니 소명을 다한 뒤의 쓸쓸함이 느껴진다.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다. 꽃이 피고 진 자리엔 열매가 달리고, 또 시간이 흐르면 다시 싹이 트고 꽃이 핀다.

나무의 일생을 돌아보며 인생을 묵상한다.

 

꽃들은 곱게 피어나는데 새들도 봄이 왔다고 지저귀는 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전쟁과 분열이 끊이질 않으니 슬프다.

우크라이나에서 무참히 죽어간 희생자들, 가족과 헤어지는 사람들을 보는 일이 괴롭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깊숙이 박혀 아직도 종종 칙칙한 방공호 안에 있는 어두운 꿈을 꾸는 나는 더욱!

 

예비 수녀 시절, 자주 걸었던 복도. 수녀원 복도는 내가 가끔 울기도 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어쩌다 만난 동료와 이야기를 하다가 선생 수녀님에게 꾸지람을 들은 적도 있고, 복도를 걷다가 멈추고 창밖의 장미를 보다가 혼나기도 했다.

침묵과 정적이 흐르는 수녀원 복도를 거닐고, 층계를 오를 때면 삶의 모습도 새롭게 움직인다.

 

평생 종소리 따라 규칙적으로 살았다.

종을 보면 그냥 좋다.

 

어떤 일로 마음이 무겁고 힘들거나 삶이 평화가 깨져 괴로울 때, 나는 수녀원 도서실을 찾아가 우두커니 서서 한참 동안 책 향기를 맡는다.

그러면 이내 마음이 차분해져 책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나온다. 얼마나 많은 위인과 성인이 우연히 읽은 책의 한 대목에서 감동과 자극을 받아 이전과 다른 회심의 삶을 살며 선한 영향력을 끼쳤는지!

 

우리는 기대어 산다. 다투지 않고 기대어 살려면 하루 한 번 삶의 끝을 상상해야 한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간절히 좋아해야 한다. 푸념하는 대신 미소 짓고, 불평하는 대신 감사 인사를 나눠야 한다.

젊은 날부터 끊임없이 사색하고 책을 읽고 이기심에 얽매이지 않고 남을 배려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나는 좋은 말을 키우고

좋은 말은 나를 키운다.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안아만 주기에도 인생이 모자란다.

 

꽃 골무를 볼 때마다 어머니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이 꽃으로 피어난다. 내게 꽃 골무는 그리움이다. 이 그리움을 생각하며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꽃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기도자, 수도자가 되고 싶다.

 

지금은 무덤 속에 계신 김계옥 베네딕다 수녀님이 1978523일 내 서원 10주년에 멋진 글귀를 써주었다,

 

생활의 흐름을 끊을 때에는

직각으로 명확하게 끊어지는

대나무 마디와 같아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기도의 원리이리.

 

노을 진 들녘에서 두 손을 모으고 가많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80대에 가까운 노수녀가, 이제는 예전보다 자유로워진 것 같다. 누가 무어라 하든 스스로 선택한 수도 여정이 행복해 보인다. 시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수행하듯 꾸준히 시를 쓰다가 그대로 한 편의 시가 될 작은 수녀! 그 수녀가 바로 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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