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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쿠바로 간다
한정기 지음 / 문학세상 / 2024년 6월
평점 :
매혹과 금단의 땅 쿠바로 떠나는 인문학 여행
낯선 공간으로의, 시간으로의 여행은 바쁜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오롯이 나를 그리고 다른 이들의 삶을 엿보게 한다. 이런 시간은 일상에 지친 나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부여하고, 나의 시야를 넓게 하면서 다시 오늘을, 내일을 살아가는 힘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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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시간 하늘을 날며 오래 전 브라질에서 읽었던 체 게바라 평전을 다시 읽었다. 청년 에르네스토가 혁명가 체 게바라가 되어 가는 과정을 다라가면서 떠오른 생각 하나,
‘50년대는 그런 혁명가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었을까?’
헤밍웨이는 미국인이지만 미국보다 쿠바에서 그를 더 잘 활용하고 있었다. 쿠바에서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는 작품을 썼으니 가난한 쿠바가 그를 관광 상품으로 내세우는 건 공평한 일이 아닐까 싶지만,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을 말할 때 “나의 노벨문학상은 내가 사랑하는 쿠바와 쿠바 국민의 것.”이라고 말할 만큼 그는 쿠바를 사랑했다.
바라코아는 정말 예쁘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아바나와 멀리 떨어진 지리적 여건도 있었겠지만, 관광객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도시는 깨끗하고 정갈했으며 사람들의 미소도 더 순박하게 느껴졌다. 찍는 곳마다 화보가 될 만치 고색창연하면서도 아름다운 스페인풍의 건물들. 대서양 끝단에서 카리브해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바다
쿠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세스페데스가 살던 생가가 있는 바야모.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지만, 다시 미국이 쿠바를 장악하고 있을 때 세스페데스는 자신의 집에 있던 노예들을 해방시키고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사내들을 전장으로 내몰게 만드는 역사, 침략자에 맞서 피 흘려 이룬 자유
마을 가장 높은 언덕에 세워진 흰 십자가가 인상적인 도시 올긴
유럽의 교회나 성당에서 보는 금박 입힌 화려한 십자가에 익숙한 눈에 올긴의 흰 나무 십자가는 너무 소박해 오히려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바르게 변하는 법. 빨마나무와 우거진 숲 사이로 펼쳐지는 초록의 발들. 한때 저 계곡 전체가 사탕수수로 뒤덮였겠지. 그곳에서 불어온 바람이 머릿결을 날리고 옷깃을 펄럭인다. 쿠바의 바람을 온몸으로 느낀다. 이 바람도 한때는 노예들의 한숨과 눈물이 섞인 바람이었으리라. 한숨과 눈물 섞인 그 바람은 이제 관광객들의 웃음소리를 싣고 흩어진다
그 사이를 흘러가든 우리들의 웃음소리를 시간의 흐름위에 얹어 두고 노예 감시탑을 내려왔다
다음 날 아침에는 청남색 바다에 발을 담그고 카브리해를 즐겼다. 동해도 아니고 서해도 아니고 홍해, 흑해도 아닌 카브리해!
그 이름이 주는 멋과 낭만이라니!
혁명의 도시,
별의 도시,
승리의 도시, 산타클라라!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전사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쿠바는 정말 멋진 인물을 얻었구나. 호세 델라라의 거대한 청동 작품인 체의 동상이 서 있는 체 게바라 기념관. 피델이 점화한 ‘영원한 불꽃’ 경건하게 타오르고 체가 서른일곱 명의 혁명 동지들과 영면에 들어 있는 추모관은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엄숙하고 성스러운 기운이 가득하다
마탄사스로 가는 길은 아름다운 대서양의 해안선을 따라 이어졌다. 짙푸른 바다와 파도의 흰 포말, 푸르른 하늘과 흰 구름은 한 쌍의 데칼코마니가되어 늘어선 야자수와 빨마나무와 어우러져 꿈속 같은 풍경을 펼쳤다
파도가 부서지는 말레콘.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 그들이 부르던 노래와 춤. 피부색과 인종, 국가, 종교를 넘어 사람 그 자체를 사랑하는 쿠바 사람들. 굴러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오래 된 차들. 바람에 나부끼는 형형색색이 빨래들. 아름답고 청청한 대지와 푸른 하늘
시간이 꿈처럼 지났다. 대서양을 달려온 파도는 끝없이 밀려와 말레콘에서 흰 포말로 부서지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들도 모두 떠나고 없다. 체, 피델, 호세 마르티, 꼼빠이 세군도..
살미란 그런 것이다. 그늘이 살아간 삶의 발자국은 누군가에겐 혁명으로 남고 누군가에겐 예술혼으로 남고 또 누군가에겐 변화의 출발점으로 남게 되겠지
chi(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