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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처음 세계사 수업 -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브렉시트까지, 하룻밤에 읽는 교양 세계사 ㅣ 인생 처음 시리즈 2
톰 헤드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6월
평점 :
뛰어난 필력과 풍부한 시각 자료로세계사의 뼈대를 튼튼히 세워주는 안내서!
120여 개의 컬러 이미지과 지도는 주요 국가와 사건, 인물을 부연 설명하며 역사의 현장을 더 생생하게 보여준다. 본문 중간중간 삽입된 ‘한 걸음 더’라는 팁 박스는 세계사 지식뿐만 아니라 철학 사상, 국제 이슈, 인문 교양까지 다루어 더 알고자 하는 독자의 호기심을 충족 시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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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좀 아는 사람들은 올메카 문명이라 하면 크고 무거운 현무암 두상을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멕시코 곳곳에서는 17개의 거대한 사람 머리 조각상이 발견되었습니다. 상당히 정교한 구체적으로 조각한 두상이라 특정 인물들을 묘사하려 한 것 같지만 너무 오래되었고 기록도 부족해 아직 누구인지, 심지어 올메카인들이 만든 것은 맞는지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지요.
전 세계를 지구 공동체를 의식하고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개념을 ‘세계주의’라고 합니다. 바로 이 세계주의의 시초가 알렉산더 대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는 이전의 그 어떤 군주보다 많은 사람들을 지배하고, 죽이고, 정복하며 세계주의의 기반을 다집니다.
마야족이 어떻게 세력을 확장했는지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왜 자신들의 도시를 떠나기 시작했는지도 알 수 없지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마야족이 약 650년간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강대하고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이루고 유지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예술과 건축은 동시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았고, 그들의 군사력과 경제력은 어마어마했습니다.
바이킹이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갔다는 증거는 서쪽으로 북 아메리카부터(콜럼버스가 ‘발견’하기 몇 세기 전에 이미 바이킹이 식민지를 건설했습니다) 동쪽으로는 콘스탄디노플까지 넓은 지역에 걸쳐 남아 있습니다. 동쪽으로 콘스탄티노플까지 넓은 지역에 걸쳐 남아 있습니다.
그레이트 짐바브웨는 12세기부터 15세기 사이 전성기에 주민이 1만 8,000명에 달하는 대도시였습니다. 금 채굴과 무역이 주요 산업이었고, 4,000곳 이상의 금광에서 54만 킬로그램 이상의 금을 캐낸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 세계에서 수 세기에 걸쳐 채굴한 금 공릅량의 40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마야와 아스테카 등의 중앙아메리카 문명, 북아메리카의 인디언 문명이 대부분 이런 식으로 사라졌습니다. 전쟁, 유럽에서 들어온 전염병의 확산, 기근과 이주 등 여러 요인이 겹쳐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집단 확살이 발생했습니다. 유럽의 식민 지배 과정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추정치만으로 수천만 명에 달합니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개척했다고 하면 사람 없는 황폐한 대륙에 도착해 직접 땅을 일구고 자리잡았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식민지 개척자들은 많은 원주민들이 살고 있던 대륙을 무자비하게 정복했고,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다른 대륙에서 노예들을 데려오기까지 해지요.
북 아메리카의 경제 성장을 직접 뒷받침한 것은 바로 노예제였습니다.
역사 속에서 과대평가된 신화 중 하나는 바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일 것입니다. 콜럼버스 자신이 인정했듯, 그는 자신과 유럽의 이익을 위해 아메리카를 발견했지 결코 대단한 사명감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1948년 6월, 국제 연합 인권위원회는 ‘세계 인권 선언’을 작성했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이자 미국의 국제 연합 대사였던 엘리너 루스벨트가 의장직을 맡았지요. 이는 국제 연합에서 채택한 최초의 인권 협정이었습니다.
다음해에는 1864년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군인과 민간인의 희상에 대한 인도적 대우에 관해 처음 합의햇던 제네바 협약을 개정해 채택했습니다.
지금까지 세계사를 살펴보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역사를 기록하고 끊임없이 연구하는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배우고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