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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더 기대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근후 지음 / 책들의정원 / 2024년 6월
평점 :
“노인은 고독하고 심지어 어린이도 고독하다.”
고독으로 시작해 고독으로 끝나는 삶이라면 우리는 대체 무엇에 기대어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혹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어제도 오늘도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간다. ‘내게는 왜 고작 이것밖에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순간 90세 정신과 의사 이근후가 말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며 살아가는 법을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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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는 ‘고작’이라고 할 일도 다른 이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 결국 어떤 사건이 트라우마로 남게 될지는 개인의 성격에 달려 있다. 그리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 또한 개인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트라우마를 스스로 해결하는 이도 있지만 끝내 지쳐 정신과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의사가 도와줄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어려운 말로 ‘행동 수정 치료다’
다른 하나는 통찰 치료라고 불린다.
정신과에서 진료를 보며 바주한 ‘내 탓이요’ 스타일을 돌이켜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첫째, 자존감이 약하고 열등감은 강해서 자신을 깍아내리는 방식으로 방어하려는 유형이다.
둘째, 양심이 지나치게 발달한 경우로, 조그마한 비양심적 일조차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니 만사가 내 탓일 수밖에 없다.
셋째, 패배감으로 가득 찬 우울증 환자다. 이 패배감을 이길 수 없어 지레 내 탓이라고 항복해 버린다.
정신의학과에서는 남 탓하는 습관을 멋들어지게 ‘합리화’라든지 ‘투사’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쉽게 말해서 어떤 상황에 몰린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없는 사실도 엮어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운다고 하겠다. 이런 태도로 살면 잠깐은 편하다. 언제나 마음이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이 바뀌는 데는 일말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내 할 일에만 집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이는 전문 지식이 많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시간이 흐른다고 그저 얻어지는 태도도 아니었다. 환자가 평생 겪을 기나긴 치료의 과정에서 나와의 인연이 어느 시점에 닿았는지에 따라 나의 평판이 결정될 뿐임을 깨닫고 나서야 나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사람의 성경과 그가 처한 상황이란 모두 다르니 오르지 못할 나무를 보지 말라고 해야 할지, 태산에 올라 보라고 해야 할지 한마디로 답하기 어렵다. 다만, 정신과에서 내려오는 치료 지침이 있다. 기세가 지나친 사람은 그 기세를 좀 죽이고, 기운이 푹 죽어 낮은 수준의 자아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격려를 통하여 자존감을 올려 주어야 한다는 조언이다.
오늘은 어떤 태산에 올라 볼까. 내 삶에는 몇 번의 도전이 남아 있을까. 열린 가능성이야말로 인생을 즐겁게 해주지 않는가.
“그래서 제가 여러분처럼 건강한 사람과 자주 접하려고 합니다.”
웃으며 농담처럼 말했지만 반은 진심이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환자를 계속 대하다 보면 감정, 행동, 사고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그러니 치료자는 자신의 정신을 온전히 유치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인간은 상대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 여러 가지 감정에 휩싸인다. 즐거운 감정도 있고 즐겁지 않은 감정도 있다. 여러 가지 수많은 감정이 있겠기지만 이를 좀 더 파고 들어 가보면 열등감이나 우월감이라는 뿌리를 발견할 때가 많다. 확대 해석한다면 우리가 대인관계에서 느끼는 모든 감정은 열등감과 우월감에서 비롯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발버둥 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세상으로부터 낙제 점수를 받았다고 해서 그 평가가 절대적이지는 않다. 나의 가능성은 나조차 정확히 할 수 없어 미래가 되어야만 확인되는 법이다. 직장에서 밀려났거나 사업에 실패했어도 괜찮다. 인간관계에서 실수했어도 끝은 아니다. 나를 평가하는 모든 잣대 앞에서 당당해지기를 소원한다.
이 세상 사람은 모두 비정상이라고 말하는 정신의학자도 있다. 흔히 생각하는 정상인이라고 하더라도 부분적으로는 이상한 부분을 누구나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버티는 시간은 불안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수도승이 아니라면 절박한 가운데 마음의 평정을 찾기란 힘들다.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면 그런 순간에도 미소 지을 일은 하나씩 존재한다는 점이다. 불안과 고통이 나를 잡아먹으려 든다면, 내 속에 숨어 있는 그 녀석을 차라리 끄집어 내자.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려 들기보다는 보듬으며 같이 행동하자.
이기지 못할 싸움이라면 전법을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불안이 내 안에 또아리를 틀게 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