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시의 계절 - 함께 살아있고 싶어서 쓰는 삼십 대 여자들의 이야
김진리 외 지음 / 허스토리 / 2023년 7월
평점 :
함께 살아있고 싶어서 쓰는 삼십 대 여자들의 이야기
매일 퇴사하겠다고 주문 외는 직장인, 진짜로 퇴사하고 삶의 광명을 찾은 프리랜서, 논문 쓴다면서 매일 누워 있는 시간이 태반인 무기력한 대학원생, 가장 바쁘지만 실상은 가장 가난한 스타트업 대표. 계절을 잃은 도시에서 답이 없는 질문 같은 삶을 함께 쓰며 풀어간다.
---
생명이 계속되는 복을 얻어 내일 아침에도 어김없이 잠에서 깨어 난다면 나는 읽을 거리부터 찾을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올해의 절기 프로젝트를 마감할 때까지는 반드시 다 같이 살아 있고 싶다.
상담은 매주 다른 감정을 겪게 한다. 어떤 날은 무척 후련했고, 어떤 날은 외면하고 싶은 과거를 마주해야 해서 혼란스러웠다. 후련한 날엔 기억하고 싶어 썼고, 혼란스러운 날엔 감정을 정리하려고 썼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깊게 팬 화를 내뱉었고, 오랫동안 외면한 상처를 끄집어냈고, 작은 사건마저 견디기 힘들었던 매일의 혼란을 적어갔다.
‘섭리’에 대해 생각한다. 자연계를 지배하는 원리와 법칙,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세상 만물의 연결성. 거대한 흐름, ‘운명’이라는 말과도 연결된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나의 믿음.
돌아온 계절, 여름의 문턱에서 어쩌면 다시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극심한 통증을 두려워하지만은 않은 건 이 때문이다. 회사를 떠나면서 그 시절을 지켜준 동료들과도 헤어졌지만, 그 중 누군가는 친구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기억 속 소중한 존재가 되어 여전히 서로를 돌보고 있다.
좋았던 시절에 내가 했던 결심은 나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 좋았던 시절과 그렇지 못한 시절의 간극은, 나를 더욱 고꾸라지게 만든 게 아니라, 땅바닥에 발가락 하나라도 딛고 서 있을 수는 있도록 붙잡아주었다. 지금은 시궁창이지만 한때의 나는 굉장히 행복했어, 라는 나만 아는 자부심이 정말로 힘든 시절을 버티게 해 주었던 것이다.
비언어적으로든 언어적으로든 자기 욕구를 잘 표현하는 사람을 나는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 구나, 내가 못 하는 걸 잘 하는 사람이 나는 꼴 보기 싫은 거구나. 이 마음들은 내가 먼저 돌봐주지 못한, 표현되지 않은 나의 욕구들에 대한 어떤 애도일까.
포도 한 알, 자두 한 알을 베어 물면서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서비스로 받은 가을 자두는 사장님이 말 한 대로 약간 텁텁했다. 그렇지만 향긋했다. 여름 자두와 비슷하집만, 완벽하게 새로운 빛깔과 맛. 지나간 여름이 아쉽지만, 다가온 가을이 기대되는 이유도 아주 많이 있다. 비슷하게 흘러갈지도 모르지만, 분명 내 손에 새롭게 쥐어볼 어떤 것들. 어쩌면 탱글탱글하겠지만 어쩌면 까슬할지도 모를 그 새로운 질감들.
긍정적이고, 명랑하고, 따뜻하지 않으면 긍방이라도 주변이 캄캄한 밤이 될 것만 같아 두려웠다. 누군가 그 밤을 겪고 있을까 봐 얼른 불을 밝히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 순간에든 가리지 않고. 진짜 나의 모습과 그 삶은 보지 못하고, 그 사람 안에서 불쌍한 나의 모습만을 발견하며 착각 속에 살았는지 모른다.
내가 내 밥상 하나 제대로 차려 먹지 못한다는 사실은 둘째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관심과 정성을 보여줄 중요한 방법 하나를 박탈당한 기분이다. 혼자 살면서 가장 외로워지는 순간을 꼽으라면 오래전부터 늘 답하던 것이 있는데, 일요일 저녁 옆집에서 풍겨오는 생선 굽는 냄새와 찌개 끓는 냄새다. 시각이 아닌 후각으로 각인된 그 장면은 이제는 나를 외롭게 하는 게 아니라 열등감을 느끼게 만든다.
이 바람은 24절기 중 가장 마지막인 대한에도 여전하다. 계속해서 순환하는 절기 속에 마지막이라는 건 큰 의미가 없다. 다만 이 글은, 제자리 같아 보일지라도 나선형의 선 위에서 조금씩 변하고 있는 나의 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