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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09세 찰리에게 배운 것들
데이비드 본 드렐리 지음, 김경영 옮김 / 동녘 / 2024년 5월
평점 :
한 세기의 역사와 삶이 담긴 놀라운 인생 수업
혐오와 비난으로 가득 찬 세상에 지칠 때, 삶이 내 맘대로 흘러가지 않아 불안할 때,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현명한 선택을 할 용기와 지혜가 필요한 순간에 찰리 화이트가 살아오면서 깨우친 지혜와 철학으로 가득 차 있는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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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는 의사였다. 덕분에 인간의 몸이 어떻게 작동하고 멈추는 지 알았다. 찰리는 자신의 남다른 수명에 유전학적과 운의 요행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이 놀라운 친구를 떠올리며 찰 리가 살아 있는 역사와 유전자 복권 당첨자 이상의 존재임을 깨닫는다.
찰리는 그런 불행을 겪었을 때 여전히 소년이었고, 이따금 찰리의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노년의 찰 리가 어린 시절을 돌아봤을 때는 외로웠던 순간이 고통스러웠던 순간보다 더 힘들었다.
찰리는 용감한 이야기를 하면 더 용감해지기 쉽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이야기를 낙관적으로도 비관적으로도 할 수 있다. 패배의 기억을 곱씹을 수도 있고 투지의 기억을 곱씹을 수도 있다. 실패를 강조할 수도 있고, 성공을 강조할 수도 있다. 찰리는 삶의 즐거운 부분만 줄기차게 이야기 했고, 덕분에 더 행복하게 살았다고 믿는다.
어떤 목표를 보고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어쩌면 이룰 수 없는 꿈이겠구나’. 이때 할 수 있는 일은 ‘없는’이라는 말이 없는 척하는 것이다. 찰리는 그걸 기가 막히게 잘했다.
찰리는 물약의 시대와 염기 서열 분석의 시대 사이, 현대 의학이 시작되던 문턱에서 의사 교육을 받았다. 의학은 미래로 가기 위해 악취가 진동하는 과거에서 벗어나야 했다.
찰리는 이 편지를 87년간 소중히 간직했다. 수십 년이 지나도록 유난히 따뜻했던 어머니의 편지글을 자주 이야기 했다. 이 편지는 찰 리가 마지막 숨을 내 쉴 때도 그의 겨에 있었다. 찰리의 어머니는 찰리를 믿었고, 찰리에게서 기쁨을 찾았고, 찰리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올바른 길을 갔다.
떳떳하게 살았다.
무엇보다 겸손함을 배웠다. 자신이 배운 의료 지식으로 대부분의 환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 금세 깨달았기 때문이다. 찰리는 배운 지식으로 고통스런 종기를 짜내고, 국소 화상에 연고를 바르고, 심한 자상을 꿰멜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진단을 내린 대부분의 병은 치료할 수 없었다.
선택은 결국 자긍심의 문제였다. “겁이 나서 군에서 사임하지 못할 것 같았지”. 찰 리가 말했다. 그래서 다시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려고 했다. “해군에 지원했데 ‘시력이 기준에 미달해서 데려갈 수가 없습니다’ 라고 하더군 의사가 왜 시력이 좋아야 하는 지 알 수 없었지만, 안 된다더군.”
“육군 항공대에 갔더니 나를 바로 데려갔어. 실제로는 진금을 했지. 원래 중위 대신 돌아가자마자 대장을 만들어줬어.”
찰리는 익숙한 환경에서도 모험을 즐겼다. 대변화의 시대에 적응하는 찰리의 능력은 시도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에서 기쁨을 찾는 면모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실패에 따르는 위험을 신경 쓰지 않았다.
‘나나니벌’. ‘미장이벌로’ 알려진 부지런한 곤충에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이 작은 해충은 회반죽 같은 진흙을 층층이 쌓아 둥지를 짖는 데, 이때 고리를 높이 치켜들고 억척스러운 자세로 죽어라 작업에 몰두한다. 이 모습은 언제나 정직하고 겸허한 노동자의 상징이었다.
찰리가 질문을 곱씹으며 계속 말했다. “난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지나갈 일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겨내고 끝까지 무너져선 안돼요. 참고 견디세요. 부정적인 생각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나는 지금도 찰리의 모습이 생생하다. 그는 눈은 침침 하지만 정신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며 이 종이에 단순한 진리들을 빼곡히 써 내려가고 있다.
열심히 일해라.
기쁨을 널리 퍼뜨려라.
기회를 잡아라.
경이로움을 즐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