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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산다는 것 - 느림의 철학자 피에르 쌍소가 전하는 “서두르지 않는 삶”
피에르 쌍소 지음, 강주헌 옮김 / 드림셀러 / 2023년 8월
평점 :
느림의 철학자 피에러 쌍소가 전하는 “서두르지 않는 삶”
시간에 쫓기지 않고 천천히 삶을 음미하며, 오롯이 내게 집중하는 법 ‘느림’ 더 많이 가지려고 바쁘게 살아갈수록, 더 피폐해지는 현대인들. 진정한 삶의 의미를 놓친 해 영혼이 지쳐가는 줄 모르고 그저 앞만 보고 달리지는 않는 가 돌아보며, 행복을 찾는 가장 효과적인 처방과 해결책으로 “느림”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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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달라진 것은, 노동의 한계를 넘어서서 행동하는 것이 한층 우월한 가치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힘이 빠져 죽고 말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따라서 몽상가들, 예컨대 묵상하거나 기도하는 사람들, 조용히 지내는 걸 좋아하거나 존재의 즐거움 자체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이런 흐름을 뒤흔들기 때문에 비난을 받는다.
그 행동의 성격을 따져보지도 않은 채.
안타깝게도 지칠 줄 모르는 사람들은 피로라는 걸 전혀 모르는 듯했다. 우리를 극도로 자극해서 잠을 방해하고 타인의 관계까지 저해하는 피로가 아니라, 우리 몸이 조금씩 잠식당해 결국 우리 몸에서 비롯되는 피로를 말하는 것이다
심술궂은 사람들이 우리의 이런 몽상을 눈치 채고, 우리의 피난처를 공격하고 우리의 감미로운 선율을 훼방하려 할 것이다. 높은음은 물론이고 자지막한 음까지 주변의 시끌벅적한 소음에도 사라지지 않듯이, 나는 우리의 감미로운 선율이 그들의 악의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일상적인 것이 어떤 방향성을 지닌다면, 즉 일상적인 것이 일정한 몸짓에 따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따라서 누구나 인정하고 예상할 수 있는 일정한 리듬에 따라서 행해진다면, 몽상의 시간은 일정한 것을 다시 창조하고 다시 시작하는 셈이다
우리가 관심을 보이면서 고려해야 할 만한 모든 것을 빠짐없이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면, 계획을 향한 여정에서 위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무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느림과 기억’. ‘현재’는 순식간에 흘러가며, 조금 전까지 앞에 있던 순간들을 금세 뒤에서 끌고 간다. 이처럼 과거의 순간들은 하나의 똑같은 궤적에 간직되기 때문에 떨어져 나가거나 망각에 빠져들 위험이 없다
망설임은 인간의 속상이다. 이런 속성 때문에 인간은 세상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다가 결국에는 신념까지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망설임에도 세상의 질서에 속하는 것일까?
요란하게 소리를 지르느라 이제는 목소리를 잃어버리고 온갖 언어와 양식이 뒤섞인 문화 속에서, 우리는 이리저리 치이지 않으려고 언제 사라지고 물러서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거친 파도가 위를 휩쓸어 삼켜버리려 할 때도 계속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하며, 촛불을 바라보며 몽상에 잠길 수도 있어야 하고, 화염에 싸인 거대도시의 불덩이를 뚫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어야 한다
휴식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피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휴식이다. 요컨대 피로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일을 조금씩 줄여가는 데서 얻는 즐거움을 생각해보면 된다. 피로가 줄어듦에 따라 휴식도 존재감을 잃어간다. 이런 휴식에는 여전히 일정 정도의 행위와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 시건 및 긴장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이런 것들이 조금씩 사라져가는 걸 보는 데서 행복을 느낀다.
다른 하나는 모든 흥분 상태가 배제되는 휴식으로, 앞의 후식보다 더 확실한 휴식이다. 이 휴식에는 어떤 일을 끝내겠다는 만족감마저 표현되지 않는다. 마음이 평온할 때나 갈등을 일으킬 때도 의식에 영향을 주는 흐름에 휩쓸리지 않는 이런 휴식 상태에 이르는 것은 무척 어렵다.
순박한 사람들은 두 유형의 휴식을 모두 경험한다.
내일 또 다른 하루가 태어날 것이다. 내일 나는 다시 견자가 될 것이다. 만물을 향해 손을 뻗고 계절의 바퀴를 돌릴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떤 계절이든 나에게는 마음에 들 것이다. 빛이 저물 때까지 나는 그 빛과 함께 할 것이고, 밤이 새벽에 의해 찢겨나갈 때까지 밤과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