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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배신 -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다 잘할 수 있을까?
김영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7월
평점 :
<노력의 배신>의 저자 김영훈교수는 그동안 우리가 진리처럼 믿어온 노력의 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노력과 재능이 성과에 미치는 영향력에 관한 과학적 증거를 분석하며 노력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살펴본다. 저자는 노력과 재능이 성공에 얼마나 기여하는 지 4가지 관점으로 접근해 논리적으로 밝히고, 우리 사회에 팽배한 이 ‘노력 신봉’이 의미가 있는지 되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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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세상에는 열심히 하는 사람과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꼭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결국 잘할 수 있다는 노력 신드롬은 잘못된 환상이다.
사람은 변할 수 있을까? 우리는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노력신봉 공화국을 성공적으로 건설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성격적 특질, 재능, 소질 등은 타고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노력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재능과 노력이 서로 독립적인 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즉 재능이 많다고 노력을 더 만이 하는 것도 아니고, 재능이 적도고 덜 노력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재능과 노력은 서로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과가 낮은 원인은 궁극적으로 ‘노력 부족’이 아니라 ‘재능 부족’이다. 노력 부족은 밖으로 보이는 꼭두각시일 뿐이고 진자 원인은 재능부족이다. 진짜 원인을 모른 채 가짜 원인인 노력 부족만 때려잡으면 재능 없는 사람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
'재능-노력 연관성‘ 개념에서 설명했듯이 타고난 재능이 높은 친구는 그렇지 않은 친구에 비해 현실에서 훨씬 더 열심히 노력한다. 그래서 타고난 재능이 낮은 친구가 노력해서 타고난 재능이 높은 친구를 이기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결론적으로 재능이 노력을 압승하는 두 번째 이유는 노력의 효과가 재능이 높은 사람에게 훨씬 더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노력하면 다 잘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노력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아무나 노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력하는 것 자체가 이미 타고난 능력이고 재능이다. 좀 더 전문적으로 이야기하면, 노력은 타고난 자기조절 능력이다. 그래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고 주문하는 것이 현실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이것이 노력이 재능을 이길 수 없는 세 번째 이유다. 좀 더 냉정하게 이야기 하면 이미 노력도 재능과 같은 편이고 같은 부류다.
재능이 노력을 압도하는 마지막 이유는 경쟁과 시간이라는 현실의 장벽이 있기 때문이다. 노력만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노력이 빛을 보기 위해서는 경쟁률이 낮거나 대부분의 사람이 노력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노력의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아무나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까지 공부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렵고, 아무리 시켜도 못하는 사람은 절대 못하며,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사람은 알아서 잘한다. 우리가 자기조절 능력을 갖추고 싶다고 해서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결정해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성격적 특질이다.
노력보다 훨씬 중요한 것들이 즐비하다. 예를 들면 타고난 재능과 특질, 사회적 환경 등이다. 또한 그런 것들은 우리가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없어서 우리의 현실을 더 아프게 한다. 그래서 노력의 양으로 소득을 분배하고 싶어 하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역설적으로 점점커지는 소득 불평등과 개인적인 아픔과 고통이다
노력 이외에 다른 요인들이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인정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더 유익하다. 그렇게 좌절할 필요도 없고, 패배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과 소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부분을 인정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인 생각일 뿐 아니라, 불필요한 패배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재능도, 가정적, 사회적 환경에 기회도, 노력도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진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마지막 보루가 하나 있다. 그것은 사회적 환경이다. 높은 누진소득세가 ‘소극적인’ 사회적 책임의 일환이라면, 사회적 환경과 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적극적인’ 사회적 책임의 실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