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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 번식장에서 보호소까지, 버려진 개들에 대한 르포
하재영 지음 / 잠비 / 2023년 7월
평점 :
품절
하재영 작가의 논픽션 데뷔작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5년만의 전면 개정증보판
저자가 우연히 강아지 피피를 맡게 되면서 개에 대해 잘 몰랐던 그는 함께 살아가기 위해 피피를 배워야 해고, 그 과정에서 버려진 개에 대해, 고통 받는 존재에 대해 눈을 뜨며 과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의문을 품게 된다. 그 답을 찾고자, 번식장, 경매장, 보호소, 개농장, 도살장을 취재하고 번식업자, 동물보호소 운영자, 애견 미용사 등을 인터뷰하여 문제작을 완성했다. 버려진 개들과 고통 받는 존재를 위해, 더 큰 사랑을 결단하게 위해, 이 책을 펼칠 용기를 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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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피는 나에게만 특별하다. 다른 사람에게 피피는 수많은 개 중의 하나일 뿐이다. 피피는 특별한 개가 아니고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피피는 나에게 특별한 개이고 나는 피피에게 특별한 사람이다. 모든 일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내가 목도한 것은 ‘삶’이 아니라 ‘장소’다. 나는 번식견의 삶에 개입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내는 장소를 잠시 방문했을 뿐이다. 내가 본 것은 그들의 일상도 아니다. 그들이 구조되고 난 후의 어느 하루를, 하루 가운데에서도 몇 시간을 함께한 데 불과하다.
누군가는 동물 활동가면 번식장을 없애야지 무슨 케이지 타령이냐고 하겠지. 번식장은 없어지지 않아. 모든 사람이 유기견을 입양하지도 않아. 앞으로도 누군가는 품종견을, 어린 강아지를 갖고 싶어 할 거야. 그러면 번식장의 동물복지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야지 무조건 없애라고만 하면 번식견이 받는 고통은 어쩔 건데?
훈련사, 자칭 동물 애호가, 개를 입양 보내는 사람, 개를 입양하는 사람, 개를 오래 키운 사람조차 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경유가 별로 없어요. 대부분은 자기 생각, 자기감정에 따라 일관성 없이 막 키워요. 개가 문제 행동을 하면 자기가 잘못 키운 줄 모르고 개 탓하면서 갖다버려요. 이게 반려동물 문화의 현주소예요. 뭐가 어떻게 잘못되었냐고 물으면 난감해요. 개에 대한 이해조차 없는데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요?
유기동물이 살아서 보호소를 나갈 확률은 50퍼센트 정도다. 원래 보호자도 찾지 ㅇ낳고 새로운 입양자도 나타나지 않은 나머지 동물은 죽음을 맞는다. 많은 사람이 안락사와 달리 자연사 비율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러나 보호소에서 유기동물의 자연사는 노쇠하여 죽음에 이르는 상태를 뜻하는 언어가 아니다. 그저 ‘안락사가 아닌 죽음’을 의미할 뿐이다.
방치되는 개들의 소유자는 개를 묶어놓지 않으면 반대로 풀어놓기에 혼종견의 혼종견의 최후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다. 유기견으로 신고 되어 보호소에서 안락사 되거나, 개장수에게 팔려가(혹은 길에서 붙잡혀가) 도살되거나. 대부분의 소유자가 중성화수술에 대한 의식이 없어서 다산이 일반적인 혼종견은 동물생산업과 함께 유기견의 문제의 또 다른 축이다. 전 천안시 보호소의 센터장 김이 밀이 말했듯, 믹스견은 끝없이 태어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식용 개 농장이 있는 나라다. 수천마리의 개를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 개농장’부터 수십여 개의 개농장이 집단으로 모여 있는 ‘개농장 밸리’까지, 하나뿐인 이 시스템을 통해 식용 개를 조직적으로 사육하고 유통한다. 다른 개 식용 나라의 개가 집힌 순간부터 수난을 겪는다면 우리나라 개농장의 개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통의 연속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식용으로 태어난 동물에게는 아주 짧은 삶만이 허락된다. 많은 사람이 동종의 아기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어야 한고 여기면서 다른 종의 아이를 먹는 것은 개의치 않는다. 구이용 닭은 인공적으로 몸을 불려 7주 만에 도살한 영계다. 송아지는 몸을 움질일 수조차 없는 나무 우리에 4개월 동안 갇혀 있다가 첫 걸음 떼어 도살장행 트럭을 탄다. 소적을 먹여 키우는 아기 양은 생후 1주에서 9주 사이에 도살된다.
누군가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고 전제한 뒤 세상에는 ‘더 고통 받는 동물’로 만들자고 주장한다면 그 평등은 무가치하다. 모든 동물은 고통의 수례바퀴에 밀어 넣으려면 궤변일 뿐이다. 진심으로 농장동물의 고통을 우려한다면 평등을 위해 새로운 동물을 축산 체계에 포함하자고 말할 수 없다. 이미 축산 체계에 들어와 있는 동물의 복지를 실현함으로써 농장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할 방법을 찾자고 말할 것이다.
개라는 동물이 참 희한합니다. 부모나 형제보다 사람인 나를 더 좋아하고 의지해요. 동종보다 인간을 사랑하는 동물은 개밖에 없을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동종과 싸우다 죽을 수 있는 동물이 개입니다. 이건 견종과 상관이 없어요. 반려견이라고 하는 품종견이나 똥개 똥개라고 하는 믹스견이나, 개는 다 그렇습니다.
인권 수준이 높고 복지를 보장하는 나라들이 동물권과 동물 복지를 실현하고 있는 상황은 우연이 아니다. 동물권과 인권은 양자택일의 문제나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상관관계에 가깝다. 모든 존재가 목적이라는 사상과 모든 생명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의 주류가 될 때, 그리하여 특권과 특혜의 구조가 평등과 공존의 구조로 변화할 때, 우리는 비로소 목적의 인간으로 대우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