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하는 소설 - 미디어로 만나는 우리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김애란 외 지음, 배우리.김보경.윤제영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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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하는 소설 - 미디어로 만나는 우리는 미디어를 테마로 한 단편 8편을 엮은 소설이다.

미디어의 본질부터 미디어를 통한 소통, 미디어 리터러시까지, 일상 속에 당연하게 자리 잡은 미디어이기 그 단어조차 진부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리가 미쳐 깊게 고민해 보지 못했던 미디어의 또 다른 모습으로 새로운 시선과 공감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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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침묵의 미래-김애란

나에게는 오래된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은 길다. 그 이름을 다 부르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평생 도움이 필요하다. 어떤 이는 그것도 너무 짧은 기간이라고 말한다.

 

나는 누구일까? 그리고 몇 살일까?

 

나는 누구일까? 그리고 어찌될까?

나는 나무에 그려지고 돌에 새겨지며 태어났다. 내 첫 이름은 오해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기들 필요에 의해 나를 점점 이해로 만들었다. 나는 내 이름이었거나 내 이름의 일부였을지 모를 그 낱말을 좋아했다. 나는 복잡한 문법 안에 담긴 단순한 사랑, 단수이자 복수, 시원이자 결말, 거의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노래다.

 

02.시트론 호로-구소현

책도 직접 넘겨보고, 잔디도 손으로 쓸어보고 싶었다. 호수 밑에 가라앚아 있는 시체도 더 훼손되기 전에 서둘러 끌어 올려주고 싶었고, 잔디밭에 한가로이 누워 있는 저기 저 사람이 범임이라고도 말하고 싶었다.

 

03.후원 명세서-오선영

결핍은 벗기고 벗겨도 계속해서 껍질이 나타나는 양파와 같았다. 한 겹 벗기고 나면 괜찮아 질 줄 알았는데, 또 다시 얇은 껍질이 나타났다. 두 눈이 새빨갛게 되도록 나의 결핍을 벗기고 나면, 그 자리엔 어떤 것도 남지 않았다.

 

윤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프로그램의 방향이 정해졌다. 메인 작가는 윤미의 교복 치마가 반질반질 닳아서 반짝일수록, 운동화 뒤축이 납작하게 눌릴수록 좋은 그림이 나온다며 윤미를 설득했다. 생크림이 눈처럼 뿌려진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먹던 안방의 시청자들이 전화기를 들어 후원금을 보낼 확률이 높아진다 말이다.

 

04위시리스트-서이제

문 앞에는 택배가 쌓여 있었다. 두유와 과일, 반찬, 두 권의 책, 샴프와 트리트먼트. 그리고 또 뭐였더라. 무엇을 주문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이제는 택배를 기다리는 설렘조차 느낄 수 없었다. 아니, 택배를 기다릴 수조차 없었다. 택배는 기다릴 틈조차 없이 언제나 문 앞에 도착해 있었으니까.

 

05.지아튜브-김혜지

언니, 언니 덕분에 나 이번에 똑똑히 알았어, 내가 정말 뭘 하고 싶은지. 이제 언니가 진짜 날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줄게. 언니가 거짓말로 쓴 . 그 글을 내려줘. 지아기 다시 지아파파랑 놀 수 있게. 엄마 아빠가 다시 지아를 사랑하게. 제발 부탁이야. 돌려줘, 지아튜브

 

06. 무료나눔 대화법-임현식

이상적인 시작이었다. 아마도 문 앞에서 우린 더할 나의 없이 간결한 인사를 나누게 될 것이다. 그는 아마도 내 나이 대 남자가 아닐까. 그는 식탁을 만지면서 좋은 물건이라고 말할 테고, 나는 오래 정든 물건입니다. 대답할 것이다.

 

이젠 흘려들었던 아내 이야기도 듣고 싶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문자메시지가 화면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검지 손가락으로 중고 마켓 앱을 차장 눌렀고, 이전 대화 목록을 더듬거렸다.

 

07.고요한시대-김보영

언어는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리 좋은 소통 도구가 아니다. 대화를 할 때 실상 의미 전달의 80퍼센트는 표정이나 몸짓 따위를 비언어적인 대화가 차지한다. 언어가 전해질 때는 주의를 기울일 때뿐이고 대개의 사람들은 대개의 문제에 주의를 기다리지 않는다.

 

08.바이센테니얼 비블리오필-전혜진

더 많이 알고 싶고, 느끼고 싶은 그 마음과 책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에 대해서. 이제는 지난 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린, 그 집념이라는 것에 대해서. 오직 그 집념을 이루기 위k, 숨만 붙은 채 2백년을 살아온 한 몸뚱이에 대해서, 대체 어디서부터 설명할 수 있을까.

가슴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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