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 본능 고라니
최우미 지음 / 림앤림북스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 취업 준비 끝에 대한민국 굴지의 회사에 입사한 청년 고라니. 자신의 뜻을 펼치겠다는 큰 포부를 안고 시작한 직장생활은 그야말로 치열한 아마존과 같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고라니의 모습에서 우리는 아주 익숙한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

 

계약직이라고 해도 정규직과 다른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약간 억울한 감은 있었지만 나는 입사가 늦어지는 것보다 계약직이라도 지금 들어가서 일을 먼저 익혀 놓는 것이 내게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나 자신을 위로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현실의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월급에서 이것저것 빼고 나면 뭔가를 할 수 있는 여유는 도무지 없었다. 누구나 직장인이 되면 자유롭게 즐기고 누리면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꿈꾸기 마련이지만 현실은 그런 상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다.

 

해가 바뀌고 인사이동이 있었다. 드디어 나는 정규직이 되었다. “고라니 씨가 이렇게 빨리 정규직이 된 건 다 내가 힘을 써서 그런 거야. 그러니 앞으로 열심히 하도록 해.”

부장인 흑곰은 부장실에서 다리를 꼰 채로 내 얼굴로 담배 연기를 뿜어 보내며 한껏 거들먹거렸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로 작은 목소리로 .”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나무늘보의 퇴사는 내게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입사 초기 때만큼 깊은 교감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유일하게 나를 인정해 준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없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막막해졌다. 그리고 이렇게 다 정리하고 떠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번듯한 직장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야생의 생태계 그 자체다. 노력하면 성과를 인정받는, 그래서 공정한 평가가 실현되는 곳은 아니었다. 여기가 과연 내가 있어도 되는 곳인가 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이 치닫고 있었다. 내 존재에 대한 좌절과 분노, 이런 비슷한 상황을 나는 이미 경험했었다. 나는 그대로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어차피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나는 애초부터 혼자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나는 마음에 빗장을 걸었다.

 

알고 있다. 인사교류 내정자가 그 자리를 따기 위해 얼마나 로비를 했을지 그리고 그 고비는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당사자가 전력을 다했을 것이라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노력하면 세상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나는 나처럼 피해를 입는 사람이 앞으로 없기를 바랐다. 공벌레와의 관계에서 느꼈던 것도 있고 해서 나는 후배들을 인간적으로 존중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선입견을 갖지 않기로 했다. 내가 보고 겪은 것들로만 판단하자. 그렇게 내가 변하면 재 주위도 따라서 변할 것이라고 믿었다.

 

난 오히려 그저 내 도독성에 핀잔을 주었다. 그렇게도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야. 선입견을 가지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지만 사람을 제대로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것은 내 잘못이다. 애시당초 그런 사람에게 똑같은 기준으로 대하려고 했던 것이 주제넘은 오지랖이었다.

 

어디에서나 소문은 돌고 돈다. 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생산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대부분은 스컹크와 두꺼비가 그 진원지였다. 그들은 인신공격적인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사마귀는 늘 이런 식이었다. 나를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자신의 의지대로 내가 조종당하는 것을 보는 게 즐거운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내가 나는 너무나도 싫었다. 끔찍하게도 싫었다.

다행인 것은 내가 일을 즐긴다는 점이다. 타의로 한다는 건 싫었지만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고라니 씨, 이건 고라니 씨가 잘못된 거 아니예요. 세상이 잘못된 게 맞아요. 그건 바꾸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고라니 씨한테 큰 스트레스로 느껴지는 걸 테고요. 그건 당연한 거니까 나만 그런 거라고 자책할 필요는 없어요. 일단 여유를 마음을 편하게 하세요.

 

고라니씨!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야?

뒤에서 화가 난 목소리도 들린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그 웅성거림 사이로 팀장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사직서라고?”

 

앞으로 제 앞에서는 탈피의 과정이 필수입니다. 그때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결단입니다. 내가 탈피하겠다는 결심 말입니다. 물론 탈피에는 고통이 수반됩니다. 하지만 어린 가재가 되는 것을 나비가 되는 것을 생각하면 견뎌 내야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