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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분홍이 좋아 ㅣ 술술이 책방 3
허은실 지음, 한호진 그림 / 그레이트BOOKS(그레이트북스) / 2023년 6월
평점 :
여름 방학을 맞아 윤유와 윤주 남매는 할아버지 댁에 갔어요. 윤우는 분홍색을 좋아해요. 그런 윤우에게 할아버지는 걸핏하면 “우리 집 장손이”, “남자가 이래야지” 잔소리를 해요. 그런데 고모할머니가 보여 준 할아버지의 어릴 적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세상의 편견에 당당히 맞서는 윤우와 할아버지의 비밀을 통해 상대방을 더욱 이해하고 보살피는 계기가 되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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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우, 윤주, 여름 방학 동안 울산 할아버지 댁에서 지내면 어때?” “엥? 갑자기 왜?”
우리는 깜짝 놀랐어, 하필 울산 할아버지 댁이라니..
할아버지랑 함께 있는 건 정말 불편해. 윤주랑 나는 당연히 가기 싫다고 했지. “얘들아, 딱 두주만 지내다 오자.” “아, 정말 싫은데...” “엄마 아빠가 둘 다 출근하니까 방학 때 너희를 돌봐 줄 수가 없어서 그래.”
“멍멍멍!” 몽실이가 짖는 소리에 잠에서 깼어, 울산에 온지 3일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몽실이가 짖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곤 해. 그런데 어라, 잠자리가 좀 달라진 것 같았어.
“윤주야, 내 이불 못 봤어?”
“서, 설마...” 나는 몽실이 집에서 이불을 꺼냈어. 그 순간 가슴이 쿵 내려 앉는 것 같았어. 아침에 한참 찾았던 내 분홍색 이불이었어!
“할아버지! 윤우, 아니 오빠 이불이 왜 몽실이 집에 있어요?”
“아, 그거? 너무 낡아서 몽실이 줬다. 사내 녀석이 분홍색 이불이 뭐냐, 창피하게. 할아버지가 파란색으로 다시 사 줄게.” 나는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 그 분홍색 이불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이불이거든.
난 이불 때문에 밥이 넘어가지 않았어. 할아버지가 그런 나를 보고는 끌끌 혀를 차며 말했어. “사내 녀석이 그게 뭐냐. 어여 푹푹 떠먹지 않고, 이렇게 깨작깨작 먹으니까 동생보다 키도 작고 빼빼 마른 거야.”
우리는 철봉에 대롱대롱 매달렸어. 난 떨어지지 않으려고 이를 악 물었지. 그런데 윤주는 별로 힘들지 않나 봐. 아주 신나 보였어. 결국 내가 먼저 철봉에서 떨어지고 말았어.
“쯧쯧...., 사내 녀석이 이렇게 힘이 없어서야...,” 나는 너무나 창피했어.
주의에 있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어. “여자애가 참 잘하네.” “에고고, 남자애가 동생인가 봐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할아버지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어. 차라리 땅이 푹 껴져서 나도 그 속으로 사라져 버렸으면...
고모할머니는 우리를 할머니 집으로 데려갔어.
“아까 왜 울었어?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셨니?” 난 그동안 할아버지랑 있던 일을 털어놓았어,
그러자 고모할머니가 콧방귀를 뀌었어.
“허 참, 별일이네. 남자답지 못하다고 혼내다니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나 보다.”
“너희 할아버지도 어렸을 때 남자답지 못하다고 무척 혼났어. 얼굴도 예쁘장하게 생겨서 걸핏하면 울곤 했지.”
고모할머니가 나무로 된 상자 뚜껑을 열자 오래된 흑백 사진들이 보였어. 할머니는 그중에서 한 장을 꺼내 보여 주었어.
“치마 입은 아이가 할머니예요?” “아니, 여기 바지 입은 아이가 나고, 치마 입은 아이는 너희 할아버지란다. 이날 서로 좋아하는 옷을 입고 놀았는데, 동네 아저씨가 재밌다면서 사진을 찍어 줬지.”
“할아버지도 이랬으면서 왜 나한테 남자답지 못하다고 하시지?
할아버지가 상자 뚜껑을 열고 사진을 꺼냈어. 우리가 보았던 어린 남매의 흑백 사진도 있었지. 할아버지는 얼굴이 금세 새빨개졌어.
“요 녀석들이! 다 너희 잘되라고 그러는 거 아니야. 할아비가 남자답지 못하다고 얼마나 혼난 줄 아니?: 친구들은 어떻게. 여자애 같다고 놀 때 끼워 주지도 않았어. 그래서 윤우 너만큼은 나 같은 일 겪지 말라고 이러는 거 아니야.”
할아버지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어. “윤우야 할아비가 자꾸 혼내서 밉디?” 나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당황했어. “아뇨...., 미운 건 아니고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윤우 널 너무 혼낸 것 같더구나. 할아비 맘은 그게 아니었는데 말이야. 남자다운 게 뭐 대수라고.. 미안하다 윤우야.” 할아버지가 사과를 하다니...! 나는 갑자기 눈물이 터졌어. 할아버지는 말없이 등을 쓰다듬어 주셨지.
할아버지가 분홍색 이불을 사 준다니... 왠지 할아버지랑 더 가까워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