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부 종이접기 클럽 (양장) 소설Y
이종산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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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여름 방학, 풍영중학교 도서부 소석 종이접기 클럽으로 모인 세연, 모모, 소라는 학교에 모여 종이접기를 한다. 을씨년스럽게 내리는 비에 멤버들은 도서관 귀신 이야기를 나눈다. 종이학 접어 달라는 의문의 여인과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를 가진 채 종이접기 클럽 활동을 이어간다. 학교 도서관에 벌어지는 미스테리한 사건과 그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 속에서 기적과 우정, 용기를 발견하는 다정하면서도 단단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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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뭐 하나 부탁 좀 해도 될까요?” 나는 내 앞에 선 사람을 보고 숨을 들이켰다. 왠지 모르게 심장이 철렁했다. 한복 저고리와 치마를 입은 젊은 여자였다. 저고리와 치마 모두 먹에 담갔다가 건진 듯한 검정빛이었다.

 

혹시 괜찮으면 종이학 하나 접어줄래요?”

 

어릴 때부터 이상하게 감이 좋은 편이었다. 영매처럼 죽은 사람의 혼이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존재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주 어릴 때부터 때때로 다른 사람들의 몸 주면에 붉은 기운이 일렁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게 거짓말을 하면 나타나는 빛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네 종이가 작아서 그래.”

소라가 말했다. 표정은 무뚝뚝하지만 분명 위로가 담긴 말이었다. 나는 집중해서 다시 살살 종이를 잡아당겨 접었다. 이번에는 성공이었다.

 

방금까지는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는데 고래 모양이 나오니 의욕이 다시 생겼다.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 그 만큼 모양이 잡히는 것도 종이접기의 묘미다.

 

제가 이상한 일들을 좇는 게 아니라, 무언가가 저를 자꾸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해결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이상한 일들이 저를 딸 올 것 같아요. 부끄럽지만 저는 그래서 비밀을 찾고 있어요. 그러면 이상한 일들도 멈출 것 같아서요.”

 

할 수 있어!”

모모가 격려하며 잘라 놓은 한지 조각 하나를 집어 단풍을 하나 더 만들기 시작했다. 소라도 조용히 두 번째 단풍을 접었다. 잘 보고 따라 해 보라는 뜻이었다.

우리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의 규칙이 있다. 절대 대신 접어주지 않는다.

아무리 어려워도 끝까지 해내야 한다.

 

소라가 벽을 가리켰다. 글씨가 커서 벽에 걸린 달력의 연도가 한 번에 눈에 들어왔다. 1937. 나는 그 숫자가 믿기지 않아 벽으로 다가가 달력을 다시 봤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달력에 있는 연도는 분명 1937년이었다.

 

오지마, 너흰 거기 있어.”

나는 두 사람에게 외치고 교실로 달려갔다. 복도 쪽으로 난 창문 안으로 아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도서실에서 봤던 삼정과 길순,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있었다. 붉은 빛 때문에 몇 명이 있는 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붉은 빛에 휩싸여 있었다. 그건 아마도 불길인 것 같았다. 붉은빛 속에 있는 삼정의 얼굴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아까 그 선생님 아니야?” “이 사람이 그 사람이야. 내가 여름 방학에 봤던, 종이학 접어 달라고 했던 사람, 종이학 귀신.” 나는 사진 속 그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리 정말 과거에 다녀 온 건가 봐.”

 

그렇게까지 위험한 일은 하지 않았던 것 같아. 책에 쓰여 있기로는 독립운동을 위한 기금을 모으거나,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가서 글을 가르치고 태극기에 대해 알려주는 활동을 했대.”

 

1933년 중일 전쟁 이후 일제의 황민화 정책이 강화되면서 신사 참배를 강요하는 압박도 극심해졌다. 풍영중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은 일제의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시위를 하는 등 저항의 뜻을 굽히지 않다가 1973년 자진 폐교를 결정하고, 이후 다시 문을 열 때까지 십여 년의 암흑기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 시기의 폐교를 패배라고 볼 수 없다. 자진 폐교 결정은 일제의 황민화 정책에 따르지 않겠다는 저항 운동의 일환이었다.

 

내 약속도 꼭 지켜 주실 거야. 선생님이 여기서 기다려 주신다고 생각하면, 나도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아. 죽고 싶다가도 괜찮아져, 네가 진자 미래에서 온 거고, 네가 말한 게 다 사실이라고 해도 괜찮아. 나 안 죽어, 어딜 가든 버틸 거야. 꼭 돌아 올 거야.

나도 기다릴게.”

 

기다릴게 미래에서

 

사당 문을 여는 데 안에 누군가 있었다. 고운 한복을 차려 입은 할머니였다. 순간 귀신이 아닐까 생각했다. “누구세요?” 사실 은 귀신인지 사람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게 누구라도 그렇게 물어보는 것인 실례다. “, 나는..”

 

아직 모두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 사람은 우리에게 돌아왔다고, 모든 약속이 지켜졌다고, 비밀을 끝까지 풀기 정말 잘했다고, 우리가 풀어낸 비밀 끝에 무엇이 있었는지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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