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속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다
최우미 지음, 최인태 그림, 최인서 사진 / 림앤림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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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이간의 여정> 이후 1년의 시간이 지났다.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맞이하는 봄과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그 시간 동안 어머니의 부재를 일상 도처에서 절감하던 작가는 슬픔과 고통을 시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했어도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특별한 슬픔이 평범한 일상으로 스며들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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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봉시

한창 바쁜 중에 울리는 휴대전화

시간 될 대 나올라는 엄마의 지친 음성

조바심에 겨우 나가 보니

녹 슨 손수레 위에 생뚱맞은 대봉시 두 상자

 

아픈 다리를 끌고서

무거운 손수레까지

지하철을 갈아타고 갈아타서

먼 회사까지 찾아왔을 엄마

 

대봉시를 내려놓고

딸의 신경질을 한가득 싣고서도

괜찮다며 돌아서서

온 길을 되짚어 걸어가는 엄마의 뒷모습

 

지금은 뒤쫓아 가 와락 부둥켜안고 싶다

고맙다고 말하며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다

아픈데 힘들게 왔다고 위로해 주고 싶다

이렇게 날 생각하는 엄마를 사랑하나고 말하고 싶다

 

최인태

딸의 첫 출산

유리창 너머로 처음 대면한 작은 녀석

 

갓 태어난 주제에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빤히 나를 쳐다보더라

늙은 사람이 신기해 보였나 봐

 

유모차에 앉으면 계속해서 뒤를 확인하다가

할머니가 손잡이를 잡기 무섭게

저리가, 저리가

 

장난기가 발동한 엄마를 슬며시 내가 밀면

서운한 듯 한마디

칫 쪼그만 녀석이

 

엄마,

인태가 곧 고등학생이 돼요.

 

호접란

고고한 자주색 호접란

엄마 집 발코니에 놓아 두었다

어느 날 무심코 들여다보았더니

활짝 만개한 자주색 꽃

 

항상 열린 창문 사이로 드나드는 바람

발코니 가득 감싸는 따뜻한 햇살

그것으로 충분했나 보다

돌봐 주는 엄마가 없는데도

 

지금은 제자리를 찾아가는 중

엄마는 엄마의 새로운 여정으로

나는 가덕 길 그대로

그것이 자연의 법칙

 

바람과 햇살만으로 곱게 피어난 호접란

가슴속 멍울은 꽃으로 피어날 테니

곁을 지켜 주는 엄마가 없어도

나는 앞으로 나아간다

 

머리 땋기

엄마가 머리를 땋아 주는 게 싫었다

머리카락이 불록 위어나오지 않게 몇 번이고 빗질하다가

손 안에서 세 갈래로 나뉘어 잡는다

그러고 있는 힘껏 잡아당기면서

머리를 땋기 시작한다

그에 맞춰 내 몸은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흔들거린다

 

엄마는 내가 10살 때 마지막으로 머리를 땋아 주었다

기념으로 사진도 찍어주었다

그리고는 미장원에서 숏컷을 했다

몸이 불편한 엄마가 더 이상 머리를 땋을 수 없어서다

 

나이 먹어 머리를 길러도 나는 머리를 땋지 않았다

길을 가다 세 갈래로 예쁘게 머리를 딴 여자아이를 보면 생각난다

사진 찍기 위해 마지막으로 엄마가 머리를 땋아 준 그날

엄마는 딸을 지극히도 예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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