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삼국지 기행 1 -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개정증보판 ㅣ 삼국지 기행 1
허우범 지음 / 책문 / 2023년 5월
평점 :
중원천하를 따라가며 다시 읽는 소설 삼국지, 난세를 살아가는 지혜를 익히다.
삼국지의 현장을 돌아보며 써내려간 답사기로, 삼국지 속 영웅들의 활약을 펼쳤던 중국 곳곳을 소개하며 생생한 현장의 모습을 전한다. 삼국지의 배경이 되었던 장소와 유적, 유물을 살펴보며 삼국지를 보다 입체적이고 통합적으로 인식하고, 역사적 고증과 현장의 경험을 통해 자료들을 제공한다.
---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삼국지’는 소설 즉, <삼국지연의>를 의미한다. 연의는 1,800여 년을 이어오며 많은 부분이 역사적 상황과 다르게 각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민중에서 사랑받고 국가적으로도 장려한 까닭은 무언인가.
먼저 이분법적 대립을 통한 단순하고 명확한 세계관을 들 수 있다. 이는 유비와 조조와 대표되는 선과 악, 한 황실 부흥이라는 대의명분을 따르는 순리와 이를 따르지 않는 역리이다.
눈앞에 영소산이 푸르른 하늘을 이고 우뚝하다. 산길을 따라 들어가니 평야가 펼쳐진다. 산속에 이렇게 넓은 평야가 있다니,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산들이 평야지대를 병풍처럼 에워싸고 계곡의 물줄기는 평야를 적시며 흘러간다. 이곳이야말로 황건군이 영채를 세우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옛날 이 마을에는 커다란 뽕나무가 있었는데 그 높이는 다섯 길이 넘었고, 멀리서 보면 마치 고대의 제왕이 타는, 지붕 씌운 수레모양과 같았다고 한다. 관상쟁이가 유비의 집 앞에 있는 이 나무를 보고 반드시 귀인이 나올 것임을 예언했고 그 예언대로 유비는 촉한 건국하였다.
대업을 이룬 조조이건만, 어찌하여 그의 고향에는 생기가 없을까. 아마도 촉한 정통론에 길들여진 중국인들이 악인 조조의 집을 보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이미 원나라 시대에 군사들이 조조의 집을 부수어 성을 쌓는데 사용했다고 하니, 조조로서는 얄궂은 운명이 아닐 수 없다.
‘경국지색’ 초선은 누란의 위기로부터 나라를 구하였다. 내로라하는 장수들도 감히 할 수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초선의 입장에서 보면 그녀의 일생은 가엾은 고난의 길이었다. 영웅들의 총애를 받았지만 결국 그들끼리의 권력 쟁탈에 이용만 당하는 처지였다. ‘가인박명’이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니, 어찌 초선뿐이겠는가. 모든 힘없는 백성이 이에 해당되는 것이리라.
파릉교는 조조와 관우가 각기 가야할 길이 있음을 알고 상대방을 존경하며 이별한 운명의 갈림길이다. 그리고 그것은 두 사람의 수준 높은 인간적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 곳이기도 하다. 떠나는 관우를 모두가 죽이라고 청했지만, 조조는 영웅답게 관우를 보내준다.
중원과 북방을 차지한 조조는 민심을 안정시킨 후, 허도로 오기 위해 산해관을 거쳐 발해만을 따라 회군한다. 빠른 길이기도 하였지만 조조에게는 다른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갈석산에 올라 시 한수를 짓기 위함이었다. 시인 조조가 시 한수를 짓는데 굳이 갈석산에 올라야만 했는가. 하지만 이 산은 평범한 산이 아니다. 중국의 위대한 황제들이 오른 산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산에 올라 개선가를 지음으로써 조조 또한 그들과 다름없는 황제의 자부심을 느끼고 암시하기 위함이었다.
제갈량이 10년간 농사를 지으며 지낸 융중은 양번 시내에서 서쪽으로 13km 떨어진 곳에 있다. 아참이어서인지 햇살이 맑고 공기도 청정하다. 융중의 풍경은 <삼국지연의>에 묘사 된 것과 흡사하였다. 산은 높지 않지만 병풍처럼 아름답고, 물은 깊지 않지만 맑고 유유하다.
한편 이곳은 서남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매림포촌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이곳은 조조가 남양의 장수를 공격하러 갈 때 병사들이 목말라 진군은 못하다 매실나무 숲이 있다고 외쳐 이 말을 들은 병사들이 갈증을 이겨냈다는 곳이라고 한다.
적벽산에 오르니 제일 먼저 적벽대전 승리의 주역인 주유의 상이 보인다. 산등성이를 일궈서 만든 평지에 세워진 주유상은 커다란 화강암으로 만들었는데, 갑옷과 투구로 치장한 주유의 모습이 웅장하게 조각되었다.
십여 년 만에 다시 찾은 형주성에는 거대한 관우상이 들었다. 동으로 만든 관우상은 높이가 무려 57m로 19층 아파트와 맞먹는다. 동상의 무게만도 무려 1,200t에 달한다고 한다. 게다 동상을 받치는 대좌는 관우와 관련된 전시관으로 만들었는데 그것만도 10m의 높이다. 그야말로 한분에 보아도 입이 딱 벌어진다. 건축비는 280억여원이 들었다고 한다.
북고산의 삼국지 유적은 역사적이기보다는 문학적인 것이 많다. 중국인들은 북고산을 손권과 유비 두 집안의 혼인과 관계 지어 그들의 아름다운 전설을 상품화하였다. 이는 삼국지에 관한 한 나관중의 영향이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