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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싸우는 이유 - MZ세대는 없다
고승연 지음 / 플랜비디자인 / 2023년 5월
평점 :
우리는 왜 분열되어 갈등하고 싸우게 됐을까?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이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이책은 우리 시대의 갈등이 진짜 세대 간의 갈등이 맞는지 의문을 가졌던 저자의 고민이자 답이다. 이념갈등, 세대갈등, 지역갈등, 정당 갈등, 젠더 갈등 이 모두는 갈등은 모두가 다른 화면을 보며 싸우고 있다. 혐오의 원료가 되는 ‘외로움’이 각자 다른 화면을 보며 고립되어 가는 우리를 점점 가두고 있음을 지적하고 직설적이고도 명쾌하게 서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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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이라는 분석들이 인기를 끌자 그 다음세대인 Z세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들에게는 ‘포코사피엔스’, ‘모바일 네이티브’, 라는 별칭이 붙었다. 두 세대를 합쳐 ‘MZ 세대’라는 다소 어색하고 이사한 세대 구분이 만들어졌고, 원래 개념 정의나 사회 현상에 대한 면밀한 분석 따위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한국 언론에서는 이 명명을 무한 재생산하기 시작했다.
‘공정성에 민감하고 기성세대와는 다른 특이한 MZ세대’라는 프레임은 기성 조직원의 임원과 리더들에게 ‘우리 조직과 내가 문제가 아니라 저 세대가 특이한 것’이라는 의식의 흐름을 만들어줬다. 나와 조직이 시대에 뒤떨어진 게 아니고, 특이한 저들만 잘 이해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단순한 해법도 금방 나올 수 있었다. 이는 ‘시대 충돌’을 ‘세대 갈등’으로 덮어씌우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각각 후진국, 개도국, 선진국 초입과 진입 이후의 다른 시대에 성장한 여러 세대들이 최첨단 IT인프라 환경을 갖춘 나라에서 모든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연령대별, 취향별, 정치성향별로 쪼개져 각자의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유유상종하며 각자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것을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바라봐야 한다.
X세대는 현재 산업화세대, 586세대보다 더한 70년대생 꼰대라고 욕을 많이 먹고 있다. 이는 여전히 강력한 586과 도전적 MZ세대 사이에 중간관리자로 끼어 있는 그들이 처한 현실 때문이기도 하고, 생존자 편향 문제이기도 하다. ‘생존자 편향’이란 이 X세대 사람들 중 ‘진짜X세대적 성향’이 강했던 이들 다수가 시실 초기에 기존 조직에 적응을 못하고 많이 떠났다기에 ‘덜 X세대적인 사람들’이 조직에 많이 생존해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늘 새로운 세대를 ‘신인류’, ‘별종’이라고 느끼고 분석하고 때로는 고개를 젓지만, 어느 시대에나 새로운 세대는 ‘싸가지가 없다’, ‘별나다’, ‘특이하다’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어쩌면 그저 스대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이걸 그냥 ‘세대차이’나 ‘세대 갈등’으로 덮어씌워 온 것일지도 모른다”
<MZ세대 사용설명서> 저자인 김효정은 “MZ세대 여성은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자라났다. 이들이 청소년기를 보냈던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는 한국 대중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다”며 아이돌 문화가 자리 잡았고, 한류라는 말이 처음 생겨났다. 이 당시부터 이 세대 여성은 누군가의 팬이 되어 끊임없이 팬덤에 속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고 설명한다. 생에 과정에서의 팬질은 장르를 가질지 않고 이뤄진다.
경제적 자유와 조기 은퇴를 꿈꾸는 구체적인 계획을 고민하는 하는 개인화세대 남성들이 이전 세대의 남성들, 특히 집단주의가 강한 86세대 임원들이 젊었을 때처럼 ‘조직에 대한 충성’을 강하게 보일 리 없다. 충성을 강요하고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20대 남성과 소통하고 그들의 역량을 끌어낼 수 없다.
첨단 플랫폼 기술 기업의 수익 추구 행위는 그 의도와 무관하게 인간의 본성과 현대 사회의 특성 그리고 이를 이용하려는 또 다른 사람들과 만나 단순한 취미와 취향을 넘어서는 가치관, 정치 성향, 그리고 이념에 다른 거대한 분리를 만들어 낸다. 사는 세계가 또 달라지는 것이다. 즉, 우리는 이제 같은 나라에 살고 있지만 실제로 사는 세계는 다르다.
한국 조직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점점 문제시되는 추세라고는 했지만. 여전히 많은 기억에서 중간관리자나, 임원, 팀장이나 실장 또는 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나 사회문제에 대한 판단과 가치관을 드러내고 동의를 강요하고 있다. 이는 정서적으로 양극화가 심해질 수밖에 없는 시대에 인사 관리 측면, 조직 관리 측면에서도 최악의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도 ‘외로움’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문제가 되고 있는 듯하다. 외로움은 혐오의 원료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미 미디어 필터버블과 에코챔버로 인해 점점 감정적으로 멀어지고 있는 사람들이 현실에서의 고독을 온라인에서의 과격성과 분노표출, 혐오감정 강화로 해결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통합’이 아니라 ‘공존’을 제안해야 한다.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극단적인 가치관을 가진(예를 들면 나치와 같은)집단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같은 나라에서 분리된 채 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지금은 온라인에서 분열이 극심하지만 이러한 ‘분리’는 조만간 ‘물리학적 지역’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선을 넘지 않는’ 대화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